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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새 민방 출현」방송가에 충격|서울방송 사장 윤세영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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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 방송계의 태풍의 눈은 새 민방의 출현이었다.
정치·경제·사회·문학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이번 민방처럼 엄청난 여파를 몰고 온 예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만큼 정부가 밀고 나가는 방송구조 개편의 핵심이랄 수 있는 민방에 대한 각계의 시각은 첨예했고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 방송관련 주요사건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거듭된 파문의 진원지이자민방인 (주)서울방송의 사실상 주인인 (주)태영의 윤세영 회장(54)에 온통 세인의 관심이 쏠린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사전 내정설·정치 자금설 등 숱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으나 국민들의 궁금증만 더해주었을 뿐「무성한 설」그 자체에 그쳤다는 인상이다.
의혹은 급기야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으나 이렇다 할 매듭 없이 막을 내렸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는 식이었다.
『이런저런 의혹들이 사실이 아님이 오히려 국감을 통해 밝혀졌다고 본다. 뚜렷한 근거 없이 나온 말들에 의혹의 눈길을 좇지 말고 서울방송이 추구하는 독립성·공정성·공익성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지켜봐 달라.』
국감 이후 사내 경영진과의 잦은 만남 이외엔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윤세영 서울방송 초대사장 나름의 견해가 실린 주문이다.
민방을 포함, 올 방송계를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다사다난하게 했던 것은 정부의 방송구조 개편에서 비롯됐다.
민방선정과 요즘 한창 논란을 빚고있는 유선TV 추진 등 두개의 축이 올해 모습을 드러낸 방송구조 개편작업의 골자였다.
충분한 여건조성이 안돼 있음에도 정부가 이토록 방송구조개편을 서두르는 것은 각종 선거를 앞두고 방송을 장악하겠다는게 아닌가 하는 일부 학계·방송계의 시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연초 일부 PD들의 수뢰사건에서부터 KBS제작거부사태, 방송법 날치기 통과, 민방 의혹에 대한 정치공세에 이르기까지 국내방송 역사상 가장 파란 많은 한해였다.
KBS의 변칙 수당지출사건에 따른 사장퇴진과 서기원 사장 선임을 계기로 비롯된 KBS제작거부사태는 방송가가 치른 심한 진통과 홍역으로 이어졌다.
많은 방송인들이 연행·구속·해고되고 방송사 내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등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으며 방송법의 국회날치기통과와 맞물려 방송연대투쟁도 확산됐다.
이 모든 것이 방송장악을 위한 정부의 사전포석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방송사노조의 일치된 주장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는 못했다.
반면 지난 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나타난 방송구조의 문제점을 없애고 2000년대의 국제방송환경에 대비한다는 정부의 논리가 일면 명분과 타당성을 띠고 있지만 이 또한 방송법 개정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려냈다.
방송구조개편의 기틀인 법개정을 합당한 여론수렴 없이 서두른 감이 없지 않은데다 국회에서의 날치기통과는 모양새는 고사하고 앞으로 말썽의 소지를 안고 있다.
내적 진통 못지 않게 외적 변화도 두드러졌다. 평화방송·불교방송·교통방송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이른바 공영체제가 끝나고 방송매체의 다원화시대를 맞게됐다.
KBS와 MBC는 TV의 신문화 현상이라 불리는 문자방송을 선보여 정보화시대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두 방송극의 구조개편을 위한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TV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위한 독립제작사의 설립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두 방송사 또한 이 분야에 큰 관심을 쏟고있다.
MBC는 독립제작사인 MBC프로덕션과 기술용역희사인 MBC미디어텍을 설립, 정식출범을 서두르고 있고 KBS도 기존의 방송사업단·제작단 등과는 별도로 10개의 자회사를 세울 계획이다.
자회사 설립은 방송사를 분해시켜 노조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게 아닌가 하는 방송사 노조 중심의 반대의견도 많아 앞으로의 노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의 실제 모습이 우려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다뤄진 현지 취재·특집기획물이 많아진 것도 금년 방송활동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동구개방 물결과 한-소 수교, 북경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이슈들이 안방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촉구했고 빈번해진 각종 남북교류도 제한적이긴 했으나 북한의 생활상이 상당한 정도로 안방에 소개된 것도 이채로웠다.
새 민방출범으로 10년만에 공영체제에서 공·민영체제로 탈바꿈한 방송가에 특히 충격을 던져준 사건으로는 MBC의 지방계열사 전 주주들의 잇따른 주식반환청구소송을 들 수 있다.
1심에서 MBC가 패소함으로써 MBC의 위상변화는 물론, 동아방송(DBS)과 동양방송(TBC)의 소송제기로 이어지면서 정부의 방송구조개편은 밑바탕부터 흔들릴 가능성을 안고 있다.
최종심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난 80년 언론통폐합의 부당성의 일면은 사법부에 의해 공식 확인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민방-유선 TV-위성방송 등으로 숨가쁘게 이어질 방송가 대변혁의 시초가 된 올해를 기점으로 형성된 급속한 변화의 흐름은 KBS-TV의 종일방송추진, 유선TV의 구체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여전히 빠른 걸음을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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