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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약간 비어 있는 삶이 정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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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넷플릭스)이 에미상을 휩쓴 이유는 뭘까?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삶을 잘 그려내서? 아니, 내 생각은 달라. 불안하고 초조한 현대인들의 내면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야. (※스포 있음)

두 주인공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는 정신없이 으르렁거리는 앙숙이야. 그런 둘이 결국 어찌어찌 해서 마음을 터놓게 되지. 함께 밤하늘을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대니가 말해. “우린 정상이 아닌가 봐. 너무 맛이 간 거지.” 에이미는 이렇게 답해. “아니면 정상인들이 망상에 빠져서 맛이 간 사람들일 수도 있고….”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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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며 기시감이 들었어. 떠오른 건 홍성남 신부의 한마디였어. “프로이드가 ‘정상적인 사람은 약간 비정상이다. 약간 맛이 간 상태가 정상이다’고 했어요. 요트도 바다를 항해할 때 약간 기울어져야 정상이에요. 가끔은 ‘아, 내가 미쳤나 봐’ 이런 얘기도 해야 그게 정상이라는 거죠.”(유튜브 휴심정)

국민윤리와 공중도덕을 사지선다 객관식으로 배워서 그런 걸까. 군대 문화에 길들여진 탓일까. 우린 ‘정상’과 ‘비정상’을 너무 정확하게 가르고 살아. 이분법도 이런 이분법이 없어. 이른바 ‘바른 생활’이 아닌 삶들은 비정상이라 무시하고, 비난하고, 일축해버리지. 그렇게 항상 정상/비정상을 의식하며 살다 보니 늘 긴장해 있고, 흥분해 있어. 그러니까 번아웃이 되는 수밖에….

서로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비정상이고, 또 그런 점에서 모두가 정상이야. 이 역설 위에 우린 숨쉬고 말하고 살아가고 있어. 그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해. 최소한 ‘정상’이란 잣대로 남을 핍박하고 서로를 옥죄진 말아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빈틈없이 채우고, 완벽하게 각 잡고 사는 건 정상이 아닌 거 같아. 오히려 약간 비어 있는 게, 살짝 구부러져 있는 게 정상이지. 진짜 삶은 그런 거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