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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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장독대는 그 집 특유의 음식 맛을 간직한 미각의 산실이다.
주부들의 온갖 지혜와 정성이 담긴 이곳은 주부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성역과도 같은 곳이었다.
예부터 「장맛이 변하면 가세가 기운다」고 했고, 「장은 장」이라고도 했다. 장맛을 지켜나가는 것은 곧 가운을 지키는 일이요, 장은 모든 음식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는 뜻이다.
뭐니뭐니 해도 전통 한국음식의 근간은 발효 음식에 있다. 발효 음식은 이를 장시간 저장하거나 맛을 보존하는 데 여간 어려움이 뒤따르지 않는다.
일찍부터 선조들이 흙으로 빚은 옹기를 사용했던 것도 바로 이 같은 결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발효음식은 기능적인 면에서 반드시 옹기라야만 했다. 저장은 물론, 음식을 적당히 발효시키는 것도 옹기 아니고서는 안 된다. 「장독이 숨을 쉰다」는 말도 바로 이 같은 기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독대는 보통 뒤란이나 앞마당 양지바른 곳에 놓여진다.
널찍한 돌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큰 독·중두리·항아리 등을 키 순서대로 진열한다.
장독 크기에 따라 담는 내용물도 각기 다르다. 큰 독에는 간장을, 중두리에는 된장, 항아리에는 고추장이나 장아찌 류를 각각 담는다.
장독대의 위치나 배열을 이렇게 잡는 이유는 다른 음식과는 달리 바람이 잘 통하고 충분한 햇빛을 쬐야하기 때문이다.
조선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황혜성씨(69·중요무형문화재38호)에 따르면 조선시대 궁궐 안에는 특별히 장만을 관장하는「장꼬마마」가 있었다고 한다.
궁녀들 가운데 선발되는 이 장꼬마마는 임금이 먹음 장의 종류와 분량을 그날그날 미리 배정해 준다는 것이다.
장꼬마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찬물로 목욕을 한 다음 햇살이 비치는 시간에 맞춰 장독 뚜껑을 열고 해가 지면 다시 뚜껑을 덮는 등 비상한 정성을 들인다고 황씨는 말한다.
장독에 정성을 쏟기로는 필부들도 이에 못지 않았다.
주변의 청결은 물론, 행여 장맛이 변할세라 발이 닳도록 드나들며 맛을 확인해보는 일이야말로 주부들의 가장 큰 임무로 인식됐었다.
시멘트 문화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장독 하나 뒤란에 놓아둔다면 어머니의 정감 어린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글 김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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