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재회귀」경고한 “살신선언”/셰바르드나제 전격사임 배경과 앞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보수득세 견제·개혁파 분발 양면작전/대외정책 변화없이 집안수습 힘쓸듯/고르비와 사전 묵계설도 나돌아 주목
셰바르드나제의 전격사임은 소련 국내의 정치상황을 둘러싼 보수·개혁파간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개혁파 정치인으로 신사고 외교정책의 집행자였던 셰바르드나제는 최근 강경보수파의 득세와 고르바초프의 보수 회귀적인 태도에 상당한 불만을 느껴온 것으로 알려져왔다.
따라서 그의 사임은 일단 이러한 보수적 태도에 대한 경고와 보수파들의 강공에 밀려 무관심과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 개혁파에 대한 분발 촉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석은 셰바르드나제가 사임연설에서 권력의 과도집중에 의한 「독재」의 출현 가능성과 대령계급장을 단 보수 반동주의자들(소유즈파 페 트루셴코 대령과 알크소니소 대령을 지칭)을 강력한 어조로 비난했다는 데에서도 간파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사임은 신 연방조약의 체결과 정부구조 개편 등을 위해 포괄적인 권한을 확보하고자 하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개혁파의 리더인 스탄케비치 모스크바시 부시장은 『고르바초프는 셰바르드나제의 사임 발표가 진정한 개혁과정으로부터 고르바초프가 이탈하려는 현상을 경고하는 매우 심각한 지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현재 고르바초프는 지나치게 보수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보수파들은 『이미 이루어졌어야할 일』이라고 반응하면서도 셰바르드나제의 사임이 사전 각본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타스통신의 정치 분석가인 안드레이 오를로프도 『고르바초프가 셰바르드나제의 사임을 사전에 알고 이를 승인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해 이와 같은 묵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가 묵계했든 안했든 그의 외무장관직 사임은 소련 개혁정책의 한 시대가 일단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만약 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가 사임을 사전에 묵계했다면 이러한 행동을 통해 고르바초프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분석가들은 크게 보아 보수진영의 분열과 급진적인 개혁세력 및 민족주의세력들에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즉 소련의 이익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미국에 양보해 동구를 팔아 먹었다는 보수파들의 비난을 듣고 있는 셰바르드나제를 해임시킴으로써 이러한 비난을 잠재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실시하면서 지나치게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비난 받아온 바카틴 내무장관,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모두 퇴진시켜 고르바초프가 보수파들의 의견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줘 보수파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개혁주의 세력들엔 고르바초프를 지지하고 그의 영도하에서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이로울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함으로써 향후 소련의 정국은 보수파나 급진파 모두 제한된 범위내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나 전체적으로는 고르바초프를 지지하는데 있어 한가지 목소리를 내게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또다른 분석은 그루지야 출신인 셰바르드나제가 자신의 출신 공화국에 대한 걱정에서 이와 같은 결심을 굳혔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현재 반연방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그루지야공화국내의 러시아계 소수민족과 그루지야 정부와의 충돌 가능성과 이에 대한 연방군의 파견,유혈사태 등을 예방하기 위한 측면도 강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은 지난 1월 연방군에 의한 과도한 진압에 항의,그루지야에서 연일 반소 폭동이 일어났을 때 셰바르드나제 자신이 직접 주민들을 설득한 전례로부터 유추된 것이다.
당시 셰바르드나제는 직접 데모대 앞에 나가 감정에 호소하는 연설로 그루지야의 반소 시위를 진정시킨바 있다.
따라서 그는 고르바초프가 무력사용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시범을 보일 대상지역을 꼽을때 최우선 지역이 그루지야나 라트비아가 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를 막기위해 이러한 결정을 굳혔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유럽에서 동서간 냉전이 종식되고 내년초 부시 미 대통령의 소련 방문을 위한 대부분의 준비가 끝나는 등 5년전에 시작한 신사고 외교정책이 대부분 실현돼 외무장관으로서의 그의 임무가 끝나가고 있다는 논리적인 분석과 함께 그의 사임을 분석하는 또다른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따라서 그의 사임으로 소련의 외교가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임이 누가되든 소련은 당분간 국내정치에 전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소련은 지난 5년 동안 외교로 세계의 주목을 끈 것처럼 향후에는 국내문제로 세계의 주목을 끌게될 것이다.<김석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