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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막는 위험성 평가…'의무화' 개정은 내년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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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작업자들이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현장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제공

지난 26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작업자들이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현장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제공

직원 10명이 근무하는 민자고속도로 운영·관리업체인 경수고속도로 주식회사는 주 단위로 다음주 작업공정에 대한 위험성평가를 실시한다. 근로자가 먼저 사업장 위험요소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안전제안 QR코드·안전제안함·안전보건 커뮤니티 등을 운영하고, 2차사고나 잠재위험을 발굴한 근로자들을 분기별로 포상해 참여 의욕도 고취시킨다. 이 회사는 올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적이 없다.

정부가 자기규율 예방체계인 위험성평가를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중대재해 감축에 나서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처벌보다 위험성평가를 통한 사전예방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하지만 연내 추진하기로 했던 위험성평가 ‘의무화’ 방안이 사실상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여전히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위험성평가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개선대책을 적극 마련해중대재해를 예방하는 제도다. 업무 중 근로자에게 노출된 것이 확인됐거나 노출될 것이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모든 유해·위험요인이 평가 대상이다.

실제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사업장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날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위험성 평가 및 안전보건관리체계 우수사례 ’에 따르면 위험성평가를 적극 도입한 중소기업들은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실제 개선해 산재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고 ▶근로자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 체계적으로 위험을 관리했으며 ▶올해 중대재해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점을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여전히 중소사업장의 위험성평가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50인 이상 사업장은 대부분(97%)이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반면, 50인 미만 사업장 3곳 중 1곳(30.1%)이 실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중소 사업장에 전문 인력이 부족하거나 근로자의 관심과 참여가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지난 5월 평가방법을 다양화·단순화하는 한편, 올 하반기에 단계적인 의무화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발표한 내용이기도 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이를 준수하지 않았을 때 벌칙 조항이 없다.

하지만 고용부는 아직 의무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 운영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태스크포스(TF)에서 아직 결론이 나오지 못했다“며“논의가 진행되는 만큼 현장 의견을 더 청취한 뒤 개정안 발의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4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이번 국회 회기 내에 법안이 제출될 가능성은 낮다.

노동계에선 당정이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시기를 2년 유예하기로 공식화한 상황에서 위험성평가마저 의무화하지 않으면 중대재해 발생 위험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위험성평가 처벌조항 도입에 반대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이유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위험성평가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데다 중대재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라며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기본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고, 각 사업장 특성에 맞는 맞춤형 평가를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방법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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