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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칼럼

부동산 거품까지 일본 닮아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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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문가들은 대개 일본 거품 붕괴의 특징을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당시 집값의 120%까지 대출해 줬을 만큼 훨씬 공격적이었고, 둘째 금리 인상이 너무 가팔랐고, 마지막으로 한국은 개인의 아파트 구입 붐이 문제지만 일본은 기업이 투기 주범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두 나라의 거품 크기나 주도세력의 차이를 강조할 뿐 거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품에는 일본식 대형 버블에서 미니 버블까지 다양하다. 두 나라의 차이점만 부각시켜 "한국에는 거품이 없다"고 입에 거품을 문다면 미련한 짓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일본 버블과 닮은꼴에 눈이 간다. 경기 부양→저금리→유동성 과잉→부동산대출 확대라는 거품 발생 경로에서부터 토지거래허가 강화, 보유세 인상, 양도세 중과세 등 초기에 동원한 정책까지 판박이다. 미적거리는 금융정책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엔화 강세로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한국은 경기를 살린다고 금리 인상을 꺼리고 있다.

국가 리더십 실종이라는 공통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리크루트 사건, 사가와규빈 사건, 가네마루 신(金丸信)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다. 자민당 지지율은 곤두박질했고 당 내부는 권력 투쟁으로 쑥대밭이었다. 누구도 거품에 눈 돌릴 여력이 없었다. 지나친 금리 인상으로 거품이 급격히 파열할 때도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의 입에서 "임기 못 마치는 첫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한나라당조차 부동산 폭탄의 예민한 파편이 두려워 몸을 사리고 있다. 그나마 한국은 내년 이후 새 정권이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두 나라의 닮은꼴에는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은 거품 붕괴 이후에도 10년 가까이 부동산값이 매년 1~3%씩 하락했다. 많은 전문가가 인구 구조 변화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이 상당수인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결혼을 해도 주택 구입을 꺼렸다. 양쪽 부모가 죽으면 집이 두 채나 생긴다는 현실적인 계산 때문이다. 주택 수요가 뚝 떨어진 것이다. 요즘 한국에도 치솟는 집값에 아파트 구입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집을 상속받기 위한 효(孝)테크까지 등장했다.

이런 추세로 진행된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선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집값에 거품이 없다면 그만큼 다행스러운 일이 없다. 제발 틀린 예언이기를 바라지만 아파트값에 30%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경보도 나온다. 일본처럼 집값이 3분의 1 토막 밑으로 폭락하는 것만이 거품 붕괴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땅값의 20%, 아파트값의 30%가 떨어지면 800조원이 증발한다고 한다. 외환위기의 2~3배에 이르는 충격이다.

나는 지금의 아파트 가격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 중 하나다. 아파트 공급 확대와 점진적인 금리 인상, 과잉 유동성 흡수를 주저해선 안 된다고 본다. 거품이 있다면 빨리 손을 써 단계적으로 깨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실패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일본 버블을 다룬 책과 보고서는 수없이 나와 있다. 일본 정부의 통한의 고백인 93년 경제백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거품은 일단 발생하면 자원 배분을 왜곡시켜 반드시 큰 비용을 치른다. …경제적 장점이 있는 거품은 결코 없다. 거품은 결점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번 경험이 가르치는 바다." 바로 옆에 일본을 두고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정말이지 너무 억울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