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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시대 명문화/한소 정상 「모스크바선언」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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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결 해소… 「통일」 기본원칙 담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이 서명,채택한 「한소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모스크바선언)은 한반도문제 해결의 기본원칙을 밝힌 첫 국제적 문건이다.
전후 동서냉전체제의 주역이었으며 한국전쟁의 배후조정자였던 소련과 그 피해자인 한국이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의지를 밝힌 것은 어느 일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선언은 전문과 양국관계에 관한 6개항의 기본원칙,그리고 11개항의 합의사항으로 구성되어 있어 명칭은 선언이지만 조약에 가까운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는 동북아 질서의 이해당사국인 미국·중국·일본 및 북한을 간접적으로 이 선언에 끌어들이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양국 정상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연다고 선언한 것은 이번 정상회담이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개막하는 미래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당초 우리측은 6·25한국전쟁,KAL기 피격사건 등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자는 내용을 넣자고 제의했으나 소련측이 미래 지향적인 선언에 자연스럽지 않다고 반대해 「미래」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대로 소련측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및 지난 9월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제의했던 아­태안보협력협의체 구성을 넣자고 했지만 우리측이 아직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반도 비핵지대화 제안은 바로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되는 것으로 한반도에서의 세력균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태안보협력협의체 구성은 소련이 유럽 쪽에서 성공시킨 유럽안보회의 같은 기구를 아시아­태평양지역에도 설립시키려는 것으로 미국·일본 등이 반대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실효성이 희박하다.
여섯 번째 합의사항인 아­태지역에서의 평화와 협력내용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88년 크노르야르스크 연설에서 밝힌 소련의 아시아국가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보장하는 것으로서 주목된다.
특히 유럽 쪽에서 페레스트로이카 외교를 성공시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아시아 쪽에도 페레스트로이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겨냥한 것이어서 우리에겐 의미가 크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선언에서 소련의 개혁정책 성공이 금후의 국제관계와 동북아 정세발전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확신을 표함으로써(합의사항 9항)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정잭방향을 뒷받침했다.
양국 정상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일곱 번째 합의사항에서 양국 관계발전이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보의 강화에 기여하고 아시아에서의 대결적 사고방식과 냉전의 종식을 가속화하고 남북통일을 위한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확신함으로써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적극적 의지를 표명했다.
마지막으로 양국 정상은 열 번째 합의사항에서 양국간 교류와 접촉의 확대가 제3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함으로써 모스크바선언이 기존의 국제관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이는 북한을 의식해야 하는 소련과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의 현실적 입장을 서로 이해한 데서 나온 것이다.<모스크바=이규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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