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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내 저장용량’ 여야 이견…방폐물 특별법 폐기될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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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3월 증설된 경북 경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전경.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증설된 경북 경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전경. [연합뉴스]

이른바 ‘화장실 없는 집’을 벗어나기 위한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이 벼랑 끝에 섰다.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규모를 비롯한 마지막 쟁점을 두고 야당이 강경한 입장을 이어가서다. 안전한 원전 이용을 위한 ‘만(萬)년지대계’가 첫걸음부터 막히면서 학계와 원전 인근 지역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특별법안은 원전 운영 시 필연적으로 나오는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을 수만 년간 보관해줄 영구처분장 설치를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는 고준위 방폐물을 따로 보관할 곳이 없어 원전 부지 내 시설에서 임시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전국 원전에 쌓인 고준위 방폐물의 포화가 시작될 전망이다. 그러면 원전 출력을 줄이거나 운영을 아예 중단할 수밖에 없다. 영구처분장이란 안전한 ‘화장실’ 설치를 더 미루기 어려운 셈이다.

원전 본부별 고준위 방폐물 포화 시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원전 본부별 고준위 방폐물 포화 시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21일 정부·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2·29일에 각각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해당 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여야는 지난해 11월 특별법 논의를 본격화한 이후 1년간 10개 안팎의 쟁점을 좁혀왔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을 임시 보관할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을 둘러싼 ‘최대 고비’에 직면했다. 이번에도 소위 문턱을 넘지 못하면 총선이 열리는 내년으로 넘어가는 만큼 사실상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원전 내 저장시설 규모를 원자로 ‘설계수명’ 기준 발생량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 원전 도입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법안 자체에 ‘비토’를 놓는 기류가 강해졌다. 특히 김성환 의원은 특별법안 대표 발의자 중 한 명인데도 법안 통과를 미루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설계수명 제한을 풀면 윤 정부가 원전 수명을 최대한 연장할 거라고 본다. 또한 신규 원전 운영 계획 등을 취소하지 않으면 법안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설계수명 기준으로 하되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가 바꿀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넣자는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 입장이 바뀌지 않다 보니 여당 내에선 민주당이 방폐물을 무기 삼아 기존 원전의 계속 운전까지 ‘발목잡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회 안팎에선 야당 태도를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만 년 이상 방폐물을 보관해줄 영구 처분장 설치라는 법 취지와 거리가 먼 원전 내 임시저장 용량, 추가 원전 운영을 쥐고 법안 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러시아 등 원전 운영 상위 10개국 가운데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 제한을 법률로 명시한 국가는 없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부지 내 저장 용량은 평소 원전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인데, 영구 처분장과 연계하면서 문제가 꼬였다”고 말했다.

특별법 폐기가 다가오면서 학계도 바빠졌다. 원자력 전문가가 모인 ‘방폐물 원로 포럼’은 15일 성명서를 내고 “후대에 부끄러움이 남지 않도록 특별법 제정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민 대부분은 안전한 방폐물 처리 시설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6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발표한 국민인식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 따르면 응답자의 91.8%가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리시설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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