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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97) 어져 내 일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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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어져 내 일이여
황진이(1506∼?)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테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병와가곡집

사랑의 대긍정

아! 나의 일이여 그리워할 줄을 몰랐더냐? 있으라 했더라면 가겠느냐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워하는 정은 나도 모르겠구나.

사랑하는 님을 마음속으로만 사모하다 말도 못하고 그냥 보내고만 자신을 한탄하고 있는 노래다. 초·중장은 님을 보낸 후의 후회를 나타내고 있고, 종장에서는 떠나보낸 후 더욱 간절해지는 그리움을 애써 체념하며 가라앉히고 있다. 더구나 ‘제 구테여’를 중장 끝에 배치함으로써 도치와 강조의 묘미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별의 정한은 ‘설온 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도셔 오소서’에서 보이는 고려의 ‘가시리’에 이어온 여성적 정서이다.

사랑의 시인 김남조 선생이 96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평생 1000여 편의 시를 쓰며 은퇴 없는 현역임을 자임했던 김남조 시인은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람아』에서 ‘결국 사람은 서로 간에 아름다운 존재’라는 대긍정의 세계에 이르렀다. 한국인 한의 정서가 선생에 이르러 시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했으니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 떠나가셨다. 부디 명복을 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