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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쿠데타 50년, 어느 투사의 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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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칠레 군부정권에 맞선 언론인 아우구스토 공고라, 배우이자 전직 문화부장관 파울리나 우루티아. 이들 부부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파울리나에요. 오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당신이 누군지 기억하는 걸 돕기 위해서예요….”

올 초 미국 선댄스영화제 다큐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터널 메모리’의 첫 장면이다. 25년 전 연인이 된 두 사람은 2014년 예순둘의 공고라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자, 뒤늦게 부부가 된다. 우루티아는 공고라의 전처 자녀들까지 사랑으로 품으며, 남편 곁을 지켰다. 팬데믹 격리 기간 남편이 어두운 과거에 감금된 듯 거울 속 자신과 싸우는 순간을 찢어지는 가슴으로 버텨냈다. 기억력이 증발해가는 남편을 보살피며, 아내는 수도 없이 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이 경이로운 사랑의 기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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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라는 TV뉴스 기자로, 사회 고발서로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범죄를 끝없이 들춰냈다. 폭압의 시대, 비밀리에 납치돼 먼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저항 운동가들이 결코 잊히지 않도록 했다. 공고라는 기억의 상징이다. 그런 남편이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을 잊지 않았으면 했다. 올 5월 남편이 타계한 뒤 아내는 현지 언론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올해는 칠레 쿠데타가 50년을 맞는 해. 칠레에선 정부의 진상 조사와 피노체트 지지 세력의 폭력 시위가 교차한다. ‘이터널 메모리’는 자국 다큐 최고 흥행 기록을 썼다. 글로벌 화제작 ‘오펜하이머’도 밀어냈다. 한국 개봉(지난 20일)에 맞춰 내한한 우루티아의 한마디가 마음에 박혔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죽음과 망각 사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