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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중국산 전기차 보조금 조사 착수…무역 전쟁 촉발되나

중앙일보

입력

유럽연합(EU)이 중국 전기차 업체를 대상으로 보조금 조사에 착수한다. 중국 정부가 파격적인 보조금을 지급해 자국 전기차 가격을 낮게 유지함에 따라, 유럽 자동차 제조사가 불공정 경쟁에 직면했다며 이를 방어하겠다는 취지다. 산업계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유럽과 중국 간 무역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폴리티코·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 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한 연례 정책연설에서 역내로 수입되는 중국산 전기차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반(反) 보조금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세계 시장은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로 넘쳐나고 있다”면서 “막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중국 전기차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게 조정됐고, 이는 유럽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저격했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로이터=연합뉴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로이터=연합뉴스

中전기차 관세, 10→27.5% 인상 가능성

EU의 조사 대상에는 중국산 전기차는 물론 테슬라(미국), 르노(프랑스), BMW(독일) 등 유럽 전기차도 포함됐다. 집행위는 구체적인 조사 방식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경쟁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과징금 등 제재를 부과하는 반독점 조사와 유사한 방법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조사 기간은 9~13개월이며, 불공정 행위가 밝혀진 업체에 대해선 현재보다 높은 관세가 부과된다. 업계에서는 현재 미국이 중국에 부과하는 관세율(27.5%)로 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은 현재 중국차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EU의 조치가 업계의 불만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니라 EU 집행위 자체의 문제 제기란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해당 소식에 이날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주가는 뉴욕과 홍콩 증시에서 무더기로 하락했다. 워런 버핏이 후원하는 비야디(BYD)의 주가는 홍콩 증시에서 2.75% 떨어졌고, 니오(Nio)와 샤오펑(Xpeng)은 뉴욕 증시에서 2% 안팎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유럽 각국은 EU의 결정을 환영했다. 로베르크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부장관은 “이번 조치는 유럽 시장에서 고성능 저비용 자동차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 불공정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숨은 보조금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 역시 “만약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보조금이 있다면 유럽은 즉각 반격할 것”이라며 반겼다.

지난 3월 방콕 국제 모터쇼에서 방문객들이 BYD 돌핀 EV 자동차를 관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방콕 국제 모터쇼에서 방문객들이 BYD 돌핀 EV 자동차를 관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차 유럽 잠식에 위기감…자충수 될 수도

FT는 EU의 이번 조치가 중국 전기차의 빠른 성장세에 대한 유럽 자동차 제조국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고 설명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에 따르면 EU의 자동차 산업은1300만여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유럽 경제의 7%를 떠받치는 중요한 산업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전기차가 유럽 자동차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유럽에서조차 유럽 차가 지배적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EU 무역담당 집행위는 중국 전기차가 3년 만에 유럽 시장 점유율 8%로 끌어올렸고, 2년 안에 15%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만 유럽 9개국에 전기차 약 35만 대를 수출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수출량보다 많은 수치다. 지난 5년 동안 EU의 중국 자동차 수입은 4배 증가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전기차 회사 역시 중국의 비야디다.

독일 남부 뮌헨에 있는 자동차 제조사 BMW 본사. AFP=연합뉴스

독일 남부 뮌헨에 있는 자동차 제조사 BMW 본사. AFP=연합뉴스

다만 이번 조치가 중국의 보복 조치를 불러 EU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자동차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주요 원자재 및 1차 부품의 핵심 공급지이자 유럽 자동차의 거대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FT는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경우, 이번 조치로 중국 내 반(反) 유럽 정서가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선 EU의 계획을 보호주의라 비판하며 맞대응을 경고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EU가 하려는 조사는 ‘공평 경쟁’을 명목으로 자기 산업을 보호하려는 적나라한 보호주의 행위로, 고도의 우려와 강한 불만을 표한다”면서 “중국은 EU의 보호주의 경향과 후속 행동을 주시하면서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EU의 보호무역주의가 중국의 맞대응 조치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리티코는 EU의 이번 조치에 대해 “정치적인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중국의 보조금이 유럽의 자동차 산업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란 사실을 EU 집행위도 알고 있다”면서 “조사 과정에서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우 큰 로비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유럽연합 경제정책 싱크탱크인 브뤼겔의 시몬 카글리아피에트라는 “보조금 조사는 긴 여정의 시작이며, 이 기간 동안 EU는 역내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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