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청와대 '전효숙 헌재소장' 포기할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청와대가 국회에 보낸 '전효숙(사진)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사실상 자진 철회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26일 "국회가 사법.국방 개혁안 등 시급한 민생 개혁 법안을 처리해 주는 조건으로 전 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키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25일 오전 총리 공관에서 이른바 당.정.청 4인회의를 연 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청와대 참모회의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교착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대통령 등 정부 대표가 참여하는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가동하자"고 제안했다.

박승희기자

[뉴스 분석]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절박한 청와대 해법 강구
노 대통령 주재 25일 참모회의서 가닥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포기'를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의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안엔 이런 속 뜻이 들어 있다. 이 실장은 이 회의에 대해 "(전 소장 임명동의안 등) 모든 문제가 다뤄질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석 달을 끌어 온 전 소장 문제를 협상 대상으로 올려놓은 것 자체가 포기를 함축하는 것이다.

정치협상회의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강렬하게 배어 있다. 직접 협상회의의 멤버로 나서겠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특히 노 대통령이 토요일인 25일 청와대 참모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내린 결론이다.

노 대통령은 그토록 집착했던 '전효숙 헌재소장'을 왜 포기한 것일까.

로 스쿨 법안, 국방 개혁안 등 이른바 국가 개혁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지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올 정기국회에 계류된 법안들 중에는 취임 후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민생 개혁 법안이 적지않다"며 "내년이 대선이 치러지는 해인 만큼 이들 법안을 처리할 기회는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나날이 악화되는 민심도 '전효숙 포기 카드'를 빼어 드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지금 청와대는 성난 민심에 둘러싸여 있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회복될 기미가 없다.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으로 여권 전체가 위기감에 빠져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이 국회에서 계속 도전받는 등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의 증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당정 분리를 내세워 한나라당의 여야 영수회담 요구를 피해온 노 대통령이 여.야.정이라는 틀을 빌려 정부 대표로서 한나라당과 직접 협상하겠다고 나선 데서 그런 다급함을 읽을 수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임기 말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재의 구조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며, 대통령이 직접 협상에 참여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노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국내 상황을 보고받고 고민하다가 결단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제안을 한 주체는 청와대이지만 성사 여부는 한나라당의 손에 달렸다는 점에서 정치협상회의 제안은 지난해의 대연정 제안과 닮은꼴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국정운영 실패의 부담을 한나라당과 나눠 갖겠다는 의도"라며 여전히 부정적 시각이 많다. 한나라당은 이 제안을 수용하든 안 하든 노 대통령이 전 소장 후보를 포기한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박승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