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부는 치료비 '외상'…마약중독 전문의 없어 "환자, 난민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경남 창녕 국립부곡병원 전경. 연합뉴스

경남 창녕 국립부곡병원 전경. 연합뉴스

‘약물중독진료소’ 갖춘 국립병원도 인력난

경남 창녕 국립부곡병원은 ‘약물중독진료소’를 갖춘 국내 유일의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이다. 90병상 규모다. 지난해엔 100병상이었으나 올 1월 정신의료기관의 병상 간격 시설기준이 ‘1m 이상’에서 ‘1.5m 이상’으로 바뀌면서 줄었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 지정 전국 24곳 치료보호기관 중 병상 수는 가장 많다. 수도권의 인천 참사랑병원과 함께 중증 마약류 중독자의 입원치료를 맡고 있는 핵심 축이다.

하지만 부곡병원은 이런 마약중독 치료 병상 중 30병상(1개 병동)밖에 운용하지 못한다. 이 병원엔 마약중독 치료 전문의가 병원장과 약물중독진료소장 둘뿐이다. 간호 인력도 15명(간호조무사 8명 포함)에 그친다. 병동 내 3교대도 빠듯한 실정이다. 2019년 부곡병원에 ‘영남권트라우마센터’까지 문을 열면서 병원 인력이 차출·분산된 영향도 컸다.

경남 창녕군 국립부곡병원 별관에 마련된 마약 중독 재활 프로그램실. 연합뉴스

경남 창녕군 국립부곡병원 별관에 마련된 마약 중독 재활 프로그램실. 연합뉴스

그렇다고 추가로 의료 인력을 늘리기도 어렵다. 중증 마약중독 환자의 경우 치료 난도가 상당히 높은데 의사들은 급여가 낮은 공공의료기관 근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김기옥 부곡병원 약물중독진료소장은 “국립병원 의료진 충원 자체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정신과 분야 자체는 인기가 있는 편이지만 바깥(민간 병원)의 50~70%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 의료진 부족, 환자는 ‘난민’ 된다”

해마다 마약류 사범은 증가하는 추세지만 전국의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에서 이들을 치료해야 할 의료진이 태부족이다. 장기간 마약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관은 “중독자들이 치료받을 곳이 없어 ‘난민’이 되다시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이 압수한 마약류. 뉴스1

경찰이 압수한 마약류. 뉴스1

전남 국립나주병원, 강원 국립춘천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두 병원 모두 마약류 중독자 입원 치료를 위해 10병상이 지정돼 있지만, 수년째 치료보호(입원) 실적은 0명이다. 춘천병원은 정신의학과 전문의 3명이 근무 중이나 일반 정신질환 환자를 치료·케어하기에도 역부족이라고 한다. 춘천병원 관계자는 “(마약 치료와 관련해) 병원에 문의가 오면 의료진이 부족하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주병원은 최근 마약 오남용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서야 부랴부랴 마약중독 치료팀을 꾸리고 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시립은평병원은 25병상을 갖고 있지만, 지난해 치료보호 실적은 한 명도 없다. 매년 200~300명의 마약중독 환자를 상대로 외래진료를 할 뿐이다. 시립은평병원 관계자는 “통원 치료는 정신과 전문의가 담당할 수 있지만, 입원이 필요한  중한 환자는 (마약중독 전문의가 없어) 받을 수 없다”며 “병원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전문의도 정원(12명)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고 토로했다.

마약 관련 이미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마약 관련 이미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민간 병원도 인력난은 심각하다. 울산 마더스병원의 병상은 대검찰청 자료엔 지난해 기준 84개로 표시돼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실제 병상 운영은 10개만 하는데, 이마저도 수년째 입원환자는 ‘0명’”이라며 “마약 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가 부족해서 수사기관에선 처음부터 중증 마약 환자는 부곡병원으로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5년간 마약중독 치료보호기관 실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대검찰청]

5년간 마약중독 치료보호기관 실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대검찰청]

치료비용 월 500만원…언제 받을지 모를 ‘외상’ 

치료보호기관은 경영난까지 겪고 있다. 의료계에선 “병원 경영의 관점에서 마약류 치료는 손대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올 3월 마약중독 치료보호기관으로 추가 지정된 대구 대동병원은 “지정 6개월째인데 경영상 손해”라고 말했다. 대동병원에는 한 달에 100여명이 마약 중독 치료를 받는다. 지정 병상 10개가 꽉 찼다. 치료보호기관은 검사나 중독자 본인·가족의 치료보호 의뢰·신청을 받을 경우 심의를 거쳐 원칙적으로 최대 1년까지 무상으로 치료(입원치료·외래진료)를 해야 한다. 비용은 입원환자 한 명당 한 달에 500만원가량이 드는데, 정부·지자체가 50대 50 비율의 ‘매칭 사업’으로 부담한다.

문제는 ‘마약중독자 치료보호규정’에 따라 지원되는 치료비용이 사실상 ‘외상’이나 다름없다는 데 있다. 마약중독 치료를 마친 뒤 비용을 신청, 지원 받게 되다 보니 실제 정산이 될 때까지 몇 달이 소요된다. 병원에선 자비로 치료하는 꼴이다. 대구 대동병원의 경우 치료보호기관 지정 이후 6개월 동안 21명의 입원 치료를 진행했지만, 정부·지자체에서 받은 치료비는 1~2명에 그쳤다고 한다.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치료예산(4억1000만원·지자체 비용 제외)의 90.1%가 이미 소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승현 대동병원 부원장은 “치료비를 신청했는데 지자체에서 예산이 다 떨어졌다고 하면 끝이다”라며 “예산을 추가로 편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설명했다. 이어 “차라리 보호기관 지정 전이 나았을 정도다”라며 “일반 환자처럼 진료하고 건강보험을 받으면 됐는데, 지금은 치료를 집중적·전폭적으로 하는데도 돈은 못 받는다”고 털어놨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인천 참사랑병원 폐원 위기 관련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인천 참사랑병원 폐원 위기 관련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소민아 국립정신건강센터 성인정신과장은 “마약중독 환자는 중독 이외에도 반사회성 인격장애 등 정신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각종 범죄와 연관성도 높아 대규모 시설과 숙련된 전문의가 필요하지만, 이를 합리적으로 보상할 별도 (보험) 수가가 없다”며 “(내년 2월 시행 예정인) 마약류관리법이 마약류 중독자 치료 보호 비용을 국가·지자체가 부담하도록 규정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실제로 예산을 얼마나 늘리고 어떤 기준으로 지원할지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