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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회생 5년 지났는데, 이제 와 세금 내라? 전국서 줄소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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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안그래도 빚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엎친데 덮친격”

A 회사는 B 구청을 상대로 지난 6월 조세 불복 심판을 제기했다. 2018년 법원으로부터 회생 기업 인가 결정을 받을 당시 등록면허세(이하 등록세)를 내야 했는데 이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연이자까지 더해 수억 원대의 세금 폭탄을 뒤늦게 맞았기 때문이다. A 회사 측은 “회생 결정 이후 5년 동안 아무런 고지도 없다가 지자체가 느닷없이 세금 납부를 통보해왔다”고 하소연했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3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회생 기업 등록면허세 과세 관련 불복 청구 현황’(2017년~2023년 8월)에 따르면, 서울·경기·경남·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뒤늦게 등록세 과세통보를 받은 회생 기업들이 각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조세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건과 올해 46건, 총 47건의 조세불복심판이 조세심판원에 청구된 상태다.

지자체가 2016년 개정된 지방세법을 근거로 지난해부터 회생 기업에 등록세를 무더기 과세하며 생긴 일이다. 당초 지방세법은 법원으로부터 회생 인가를 받은 기업의 등록세를 비과세하도록 규정했지만 2016년 법 개정을 통해 과세 대상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상당수의 지자체가 등록세를 걷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지내왔다. 부산시 사하구청이 2022년 이를 ‘숨은 세원’으로 발굴한 게 적극행정 사례로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다른 지자체들도 뒤늦게 추징에 나서며 일이 커졌다.

지자체가 회생 기업에 아무 고지 없이 6년을 흘려보낸 사이, 지연이자가 더해져 추징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행안부 자료에 따르면, 회생 기업에 부과된 등록세 과세규모는 1090억원(7월 말 기준)에 달한다. 이 가운데 무려 40%(420억원)가 지연이자다. 회생절차가 2019년 2월 종결된 STX중공업, 2022년 11월 종결된 쌍용자동차도 뒤늦은 세금고지서를 받았다.

이번 사태는 2016년 지방세법 개정이 기존 채무자회생법과 정반대의 내용을 담으면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지방세법과 달리, 채무자회생법은 회생 기업의 등록세를 비과세 대상으로 규정한다. 막대한 빚을 변제해야 하는 기업을 위해 세 부담이라도 덜어주자는 취지로 반영된 규정이다. 이강민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회생 기업의 등기를 등기소에 위임해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원은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등록면허세를 비과세 대상으로 인지하고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자본금 증자 등에 대한 등기 절차를 밟을 때 ‘선(先) 등록세 납부, 후(後) 등기’가 원칙이라 세금 납부를 빠트릴 일이 없다. 반면 회생 기업의 경우 법원 지시에 따라 등기소가 등록세 납부 여부와 상관없이 등기를 내줘, 정작 납세 주체인 기업은 등록세가 발생했단 사실 자체를 모를 수 있다.

문제는 사법부가 지방세 개정 직후 이런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만희 의원은 “지방세법의 모순점이 5년간 방치된 결과 회생 기업에 부과된 세금이 지금도 불어나고 있고, 관련 행정소송이 전국 각지에서 빗발치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뒤늦게 법 개정에 나섰지만 ‘소급 적용’ 조항이 빠져있어, 기존에 과세 처분을 받은 회생 기업들은 꼼짝없이 등록세를 납부해야 할 처지다.

☞등록면허세=재산권에 관한 각종 권리 설정·변경 또는 소멸을 등기·등록하거나 사업 관련 면허 및 인허가를 받은 사람이 내야 하는 지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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