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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 부산행…전주 팬들 “방 빼라 한 공무원 누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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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프로농구 KCC가 22년 동안 홈구장으로 쓴 전주체육관. 전주체육관은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홈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KCC는 전주시와 부지 소유주인 전북대와 갈등으로 이전을 택했다. [중앙포토]

프로농구 KCC가 22년 동안 홈구장으로 쓴 전주체육관. 전주체육관은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홈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KCC는 전주시와 부지 소유주인 전북대와 갈등으로 이전을 택했다. [중앙포토]

프로농구 전주 KCC가 연고지를 옮기기로 했다. 22년 동안 정든 전주체육관을 떠나 부산 사직체육관으로 이전한다. 연고지인 전주시와 홈구장 부지 소유주인 전북대와 갈등을 벌인 끝에 결국 이전을 택했다.

KBL은 30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KCC의 연고지를 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1년 대전 현대를 인수하면서 전주로 건너간 KCC는 창단 후 처음으로 전주를 떠나게 됐다.

◆KCC “농구가 뒷전이 된 느낌”=KCC는 최근 연고지 문제를 놓고 지역 사회와 갈등을 빚었다. 먼저 지난달 전주시는 KCC에 약속했던 체육관 신축을 백지화하고 그 자리에 프로야구 2군 구장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전주체육관 부지 소유지인 전북대 측은 일대 재개발을 위해 2025년까지 방을 빼달라고 KCC를 압박했다.

그러자 KCC는 곧장 연고지 이전을 추진했다. 새 체육관 건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노후화된 전주체육관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주체육관은 50년 전인 1973년 건립돼 시설이 크게 낡은 상태다. 관중석 역시 4300석 정도로 10개 구단 홈구장 중 규모가 가장 작다.

KCC 최형길 단장은 “연고지를 옮기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은 22년간 응원해주신 전주 농구팬들이었다.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죄송하다는 이야기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때는 지난 4월이다. 새 체육관을 우리 보고 직접 지으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또, 5월에는 새 체육관이 들어설 부지에 야구장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농구는 뒷전이 됐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최형길 KCC 단장이 30일 서울 KBL 빌딩에서 열린 KBL 이사회를 마친 취재진에게 연고지 변경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형길 KCC 단장이 30일 서울 KBL 빌딩에서 열린 KBL 이사회를 마친 취재진에게 연고지 변경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주시 “KCC가 기획한 각본”=그러나 전주시의 반응은 달랐다. 전주시 측은 오히려 “올해 초부터 사전 기획된 각본”이라고 주장했다. 오병목 전주시청 문화체육관광국 체육진흥팀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KCC가 밝힌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체육관 건립을 요구했다거나 빨리 방을 빼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며 “새 체육관 건립이 늦어진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코로나19와 각종 건설비 문제로 차질이 생겼다. 지난해까지는 KCC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우리와의 만남을 피하더라. 시청에선 심도 높은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KCC에서 언론 플레이를 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이사회 의결이 끝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이사회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오전 8시30분 시작해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론이 났다. 10개 구단 단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KCC가 연고지 이전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표결 없이 KCC의 부산행이 확정됐다. 전주시는 “연고지 이전을 앞두고 KCC와 전혀 협의가 없었다. 이익만을 좇은 KCC의 어처구니없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농구계에선 전주시의 대응이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농구 관계자는 “이미 새 체육관 건립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KCC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전주(인구 64만 명)보다 시장이 큰 부산(330만 명)으로 가기 위해 KCC가 사전작업을 끝낸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KCC는 전주에서 ‘농구 명가’로서의 기틀을 세웠다. 챔피언결정전 3차례 우승과 정규리그 2회 우승으로 현대의 명성을 계승했다. 최근에는 이승현과 허웅, 라건아 등을 앞세워 인기몰이를 했다.

KCC가 새로 쓸 사직체육관은 2006년부터 2021년까지 부산 KT(현 수원 KT)가 사용했던 홈구장이다. 지금은 여자프로농구 부산 BNK 썸이 사용하고 있다. 최형길 단장은 “BNK와 일정을 조율해서 체육관을 함께 쓸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번 연고지 이전으로 프로농구 10개 구단은 모두 비호남팀으로 꾸려지게 됐다.

한편 이날 연고지 이전 소식이 전해지자 전주시 민심은 발칵 뒤집혔다. 전주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KCC에 방 빼라고 한 공무원이 누군지 끝까지 추적할 거다” “진짜 무능함을 보여준 치욕적인 날” “전주시 역겹다” “다시는 당신(우범기 전주시장) 안 뽑는다” 등 비판과 조롱 글이 쏟아졌다.

KCC가 전주에서 남긴 추억들

◦ 연고지 기간 : 2001~2023년
◦ 챔피언결정전 우승 : 3회(2004·2009·2011년)
◦ 정규리그 우승 : 2회(2016·2021년)
◦ 출신 스타 :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이상 은퇴), 이승현, 허웅, 송교창
◦ 거쳐간 감독 : 신선우, 허재, 추승균, 스테이시 오그먼, 전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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