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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풀면 성장률 오르지만 나랏빚 걱정…재정 지출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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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국의 경기 침체,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등 하반기 한국 경제를 둘러싼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정부가 재정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떨어지는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랏돈을 풀자니 나라 ‘곳간’ 채우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허리띠를 끝까지 졸라매자니 저성장을 방치하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경제학계에서는 하반기 중 경기 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착수할 수 있다는 전망이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한국의 1분기·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각각 0.3%·0.6%(전분기 대비)로 부진한 성적표를 받은 건 글로벌 반도체 경기 부진과 대(對)중국 수출 위축 등 대외적인 측면이 크다. 여기에 예년에 비해 줄어든 정부 지출도 한몫했다. 정부 지출이 전체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에 기여하는 정도는 지난해 4분기 0.5%포인트에서 올해 1분기 0.1%포인트로 줄었다. 2분기(-0.4%포인트)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다른 부분에서 만든 성장률을 오히려 정부가 갉아먹었다는 의미다.

나라 살림이 쪼들리다 보니 상반기에 재정 지출이 속도를 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15일 기획재정부가 매달 펴내는 월간 재정동향을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1~6월) 재정 지출 진도율은 55.1%로 나타났다. 정부가 올해 편성한 예산(638조7000억원) 가운데 상반기에 351조7000억원을 썼다는 얘기다. 최근 5년 새 가장 낮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60.6%)과 비교해도 진도율이 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정부는 보통 상반기에 재정 지출을 집중한다. 연말에 못 쓰고 남는 예산이 없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경기 침체를 우려할 때 방어 무기로 재정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민간 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가 기대한 대로 경기가 ‘상저하고’(上底下高·상반기에 저점을 찍고 하반기 반등)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상반기부터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예고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재정 지출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며 “예산을 편성할 때 재정 지출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효과까지 고려하는 만큼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하반기에도 재정지출 확대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윤 정부가 내건 ‘긴축 재정’ 기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확장 재정’ 여파로 문 정부 5년간 나랏빚은 400조원 이상 급증했다. 윤 정부는 미래세대의 짐을 덜기 위해 나라 살림을 건전화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또 열악한 세수(국세 수입) 상황도 정부를 코너로 내몰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수는 296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8조1000억원 감소했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보다 49조9000억원 늘었다.

하반기 경기가 예상만큼 살아나지 못할 경우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재정 지출이 포퓰리즘에 의해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경기 경착륙을 피하기 위한 재정 지출은 필요하다”며 “서민들의 고통을 줄이고, 경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만큼 재정 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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