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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유능한 보수정권의 실업급여 해법

중앙일보

입력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실업급여는 실직자가 받는 돈이다. 일자리를 잃은 이에겐 절대적인 ‘사회안전망’이다. 재직 중 근로자와 고용주가 낸 고용보험료가 재원이다. 최소 120일, 최대 270일간 퇴직 전 3개월간 평균임금의 60%를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금액이 최저임금의 80%보다 낮으면 최저임금의 80%를 준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실업급여 제도 개선에 나선 데는 고용보험기금 고갈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작년 말 기금 적립금은 6조3000억원인데,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려온 10조3000억원을 제외하면 실제론 3조9000억원 적자다. 최근 몇 년 사이 실업급여 지급액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 인상이 큰 이유다. 코로나19도 영향을 미쳤다.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으로 단시간 근로자가 증가한 탓도 있다.

당정, 실업급여제도 개선 나서

모럴 해저드의 토양 고치려면

급증한 비정규직부터 고민을

 그런데 당정은 적자 원인으로 수급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지목한다. 실업급여 수준이 높아 실직자들이 일자리를 열심히 찾지 않고, 실업급여를 여러 번 타기 위해 퇴사와 취업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틀린 분석은 아닐 것이다. 고용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실업급여 하한액 적용자의 38.1%는 실업급여가 실직 이전 근로소득(세후)보다 많다고 한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 중 재취업률은 28%(2022년 기준)에 그친다. 지난 5년간 실업급여를 3회 이상 받은 사람이 10만2321명(전체 수급자의 약 6%)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적절한 말까지 했다.

 모럴 해저드는 건강한 시장경제의 적이다. 모럴 해저드가 만연하면 나라 곳간은 거덜난다. 시장경제도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 그러나 모럴 해저드만 강조하면 전체 문제의 일부밖에 볼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실업급여 증가의 초점을 실직자의 ‘양심 불량’에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 수급자의 73%가 하한액을 적용받는다. 저임 근로자들이다. 실업급여가 근로소득보다 많다는 것은 기존 일자리가 열악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가 작년 기준 276만 명, 전체 임금 근로자의 12.7%다.

 여당과 정부의 진단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다. 비정규직 문제다. 이들 중 많은 이가 1~2년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실업자가 된다. 기존 직장에선 더 일할 수 없다. 상당수가 실업급여에 의존하면서 다음 일자리를 찾는다. 지난해 8월 통계청 조사에서 비정규직은 815만6000명, 전체 임금 근로자의 37.5%다. 비정규직 처우는 정규직에 한참 못 미친다. 시간제를 제외한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261만원으로 정규직(348만원)의 75%다. 국민연금 가입률은 비정규직(38.3%)이 정규직(89.1%)의 절반도 안 된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국제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Temporary Workers)으론 2021년 28.3%인데, 이는 영국(5.6%)의 5배, 일본(15%)의 약 2배다. 더 문제는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이동하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이다. 2020~2021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이 10.1%라는 연구(유경준·권태구)도 있다. 청년들은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막막해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청년의 미래, 고용 안정, 양극화와 직결돼 있다.

 현 정부와 여당이 집권 1년이 넘도록 비정규직을 비롯한 고용 시장의 구조적 모순에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럽다. 그러니 정부·여당의 실직자 모럴 해저드 탓이 폭넓은 공감을 받지 못한다. 많은 실직자가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지만 구하지 못하고 있다. 유능한 보수정권이라면 모럴 해저드가 자라나는 토양을 고쳐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단연 최고의 해법이다.

 글=이상렬 논설위원 그림=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