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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협상 결렬 비용’ 커, 미국 반도체 규제에 ‘속수무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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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15면

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만났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만났다. [AFP=연합뉴스]

경제학 게임이론 중 중요한 분야로서 협상게임(Bargaining Game)이 있다.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대로부터 얻어 내기 위해서 협상을 하는 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인 만큼 협상게임은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이다.

그 협상게임의 분석 방법을 이용해 현재 전 세계의 모든 협상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중요성에서 으뜸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미·중 갈등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물론 나는 정치학이나 군사학 전문가가 아니지만, 게임이론의 협상게임을 적용하면 현재 미·중 갈등에 대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국제적 이해득실에 있어서 미·중 갈등은 가장 중요한 이슈이므로 게임이론의 측면에서의 분석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협상을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영어로 Threat Value라고 하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영어에서 Threat는 위협이라는 단어이고 Value는 가치라는 단어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정식 용어로 자리 잡지 않은 이 영어 표현을 나는 ‘결렬 비용’이라고 부르고 싶다. 협상은 참여하는 양측이 최종적으로 합의해서 악수를 하고 끝마치는 것이 목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합의를 도출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이 결렬됐을 때 양측이 입게 되는 피해이다.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협상이 결렬됐을 때의 상황을 당신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면서 서로 위협을 한다는 의미가 이 단어에 담겨 있다.

국가간 협상 결렬되면 서로 피해 커

아파트를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협상할 때 사려는 사람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1개월 안에만 비워 주면 되는 반면 팔려는 사람은 내일 어머님이 수술비를 마련해야 해서 오늘 반드시 아파트를 팔아야 한다면 협상의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 아파트는 시세에 비해서 훨씬 낮은 가격에 매매가 이루어질 것이다.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은 협상이 결렬돼도 1개월 안에 다른 아파트를 구입하면 되므로 오늘 이 협상이 결렬돼도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즉 결렬 비용이 별로 크지 않다. 반면 아파트를 파는 입장에서는 오늘 아파트를 팔지 못하면 내일 어머님이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어머님을 잃을 수도 있으니 결렬 비용이 극도로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아파트의 판매자가 헐값에 매각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이런 협상 게임의 결과를 가지고 현재의 미·중 관계를 살펴보자.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경제 군사 대국들이 협상에 실패한다면 작게는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군사적 충돌까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강대국 각각의 결렬 비용은 어떤가?

일단 미국의 결렬 비용을 살펴보자. 경제적으로는 현재 미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저렴한 각종 제품들을 더는 수입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가 그렇게 노력해서 안정시킨 인플레이션은 다시 엄청나게 치솟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미국 소비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직접 군사적인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파운드리 반도체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는 대만의 TSMC 기업을 향해 중국이 미사일이라도 발사하면 미국은 대만을 군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결렬 비용은 상당히 크다.

중국의 경우는 어떤가? 아직 미국에 비해서 경제면이나 군사력면에서 약자인 중국의 결렬 비용은 당연히 미국보다 클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단순히 미국뿐 아니라 미국의 우방인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중국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므로 중국의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또한 기술적 측면에서 아직 최첨단에 이르지 못한 중국의 입장에서 반도체와 같은 필수 생산 요소의 수입이 중단되면 국가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군사적인 대결로 아직 미국을 이길 수도 없으니 중국의 결렬 비용은 미국의 그것에 비해서 훨씬 클 것이다.

이런 협상 이론의 결과는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미 미국이 중국에 협상 결렬의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중국이 자랑하던 통신장비 기업인 화웨이가 실질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또한 미국이 중국에 대한 최첨단 반도체의 수출을 금지해 중국 정부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미국이 이런 힘을 가진 것은 금융시장에서 모든 돈의 흐름을 미국이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제3국의 기업이 미국의 통제를 무시하고 북한과 같은 국가와 거래하게 되면 그 기업뿐 아니라 그 기업이 거래하는 은행은 더는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위험을 무릅쓸 은행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미국의 통제를 위반한 기업은 그 이후 직원들의 월급도 현금으로 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신용카드로 제품을 팔 수도 없다. 금융 기관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동네 구멍가게도 살아남을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어쩌면 이렇게 화웨이 같은 중국의 대기업을 시장에서 내쫓았지만 중국은 이를 참을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렬 비용을 계산해 봤을 때 미국과의 협상을 결렬시키는 것이 중국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자체 결론이 난 것으로 보인다.

먼 미래에 중국의 경제와 군사력이 미국을 넘어설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에서 결렬 비용을 두려워하는 중국의 모습으로 판단할 때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중국이 한동안 엄청난 양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이런 미·중 갈등이라는 고래들의 싸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미·중 갈등이 고래들의 싸움이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한쪽 고래가 다른 쪽보다 훨씬 크고 힘이 세다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작은 고래 편을 든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양쪽에 모두 우호적인 입장을 영리하게 취한다는 것도 현실에서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한국 정부가 이런 어중간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중국도 감당하지 못하는 미국과의 결렬 비용을 한국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화웨이도 시장서 쫓아낸 미국의 힘

오히려 한국이 신경 써야 할 협상게임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게임이 아니라 미국 쪽에 있는 일본과 대만과의 협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국과 갈등을 겪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에 가까운 한국과 대만에서 그 중요한 반도체의 대부분이 생산되고 있다는 현재의 상황이 몹시 마음에 걸릴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일본이 다시 한번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을 일본으로 대체하려는 협상을 미국과 일본이 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반도체 생산을 이어 가기 위한 협상을 미국·일본과 이어 가지 않는다면 한국의 결렬 비용은 막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의 위협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본을 한국을 대신할 반도체 생산국으로 선택한다면 한국 경제에 주는 타격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일본과의 협상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면 우선 한국의 국방력과 한국민의 국방 의지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 생산 기지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이는 또한 군사적 중요성을 가지는 한국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결렬 비용이 클 수 있다는 시그널이 되어 협상에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반도체의 최종 생산은 거의 안 하지만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라고 일컫는 반도체 생산 설비의 강국인 일본이 최종적인 첨단 반도체까지 생산하는 경우 미국의 이익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협상에서 언급돼야 한다고 본다. 중국이 부상하기 전 미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일본 경제의 부상이었고 사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이던 일본이 그 지위를 잃고 한국이 대신하게 된 것은 미국이 일본의 성장에 대해 위협을 느꼈던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이 일본에 힘을 실어 주다가는 일본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힘을 다시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미·일의 협상에서 한국이 제외된다면 미국의 결렬 비용도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국·일본·대만의 반도체 생산 비중이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 미국의 이익일 가능성이 크므로 한국 정부는 이런 점을 협상 카드로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협상게임 측면에서의 분석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경제학 비타민』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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