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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탐욕과 무능의 잼버리에 엄정한 ‘징비’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52호 30면

정부 예산 빼내는 데 급급했던 전북도

불참 국가 현황조차 파악 못한 조직위

모두 깊이 자성하고 세계에 사과해야

“항만·철도·공항 등 인프라 구성을 빨리하기 위한 명분을 위(정부)에 줘서 예산을 빨리 빼내려고 새만금에 잼버리를 유치한 것 아니겠나.” 전북도의회 회의록(2017년 11월)에 있는 의원 발언이다. 2017년 여름 새만금 잼버리 개최가 확정됐고, 2019년에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예비 타당성 조사가 면제됐다. 2029년 개항이 목표다. 잼버리 대회는 오늘 끝나고, 공항은 계획대로 만들어져도 6년 뒤 완성이다. 4년 전 공개된 국토교통부 보고서에 따르면 새만금공항의 비용 대비 예상 편익(B/C) 지수가 0.479다. 투입 예산의 절반만큼도 효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통상 이 수치가 1 아래면 정부가 일을 벌이지 않는다.

새만금에 들어선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는 아직 내부·주변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잼버리 대회 본부로 건립이 추진됐다. 건립 비용은 약 480억원. 그런데 내년 봄에 완공된다.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임시 사용 허가를 받아 미완성 상태로 썼다. 김경률 회계사는 “따져 보니 3.3㎡(1평)당 건축비가 1958만원이다. 서울 신축 아파트 건설 원가의 두 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잼버리 대회 부지는 갯벌이었다. 근처에 매립된 땅이 있었는데도 전북도청은 갯벌을 선택했다. 농지로 지목을 변경해 농어촌공사의 농지관리기금을 끌어왔다. 매립에 1800억원 넘게 들었다. 현장 경험이 많은 농어촌공사에 기반 공사를 위탁하자는 의견이 도청 내부에서 제기됐지만, 지역 업체에 맡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역 경제 활성화가 명분이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였다. 공사라도 제때 잘했으면 좋았으련만, 매립이 지연됐다. 결국 나무 한 그루 없는 땡볕 야영장이 됐다.

조직위는 지난 2월 정부에 대대적 공무원 파견을 요청했다. 일할 사람이 부족했다. 조직위가 정한 구성원 급여가 전문직은 월 230만원이었다. 민간 자원자가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조직위 임원의 급여는 그것의 서너 배였다. 조직위는 대회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에서 후원금을 걷었다. 텐트 업자가 약 7억원을 냈다. 영수증 발급은 없었다.

지난 8일 충남의 한 대학교 직원들은 예멘 잼버리 대원 170명을 기다렸다. 출장 뷔페까지 준비했다. 태풍 카눈 대비 차원에서 각국 대원들이 전국으로 분산된 날이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시리아 대원 숙소로 지정된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예멘과 시리아의 대원들은 입국조차 하지 않았는데 조직위는 지자체에 숙소·음식 제공을 요청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잼버리 파행을 쓰자면 끝이 없다. 탐욕·무책임·무능이 빚은 ‘참사’라 할 만하다. 이 잼버리 대회가 오늘 막을 내린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88올림픽으로 국민 저력을 확인하고 산업국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2002년 월드컵으로 온 국민이 하나가 되고 문화국의 위상을 만방에 떨쳤다. 그랬던 나라가 32년 전에도 잘 치러 박수받았던 잼버리 대회로 국제 망신을 했다. 지금 국민은 “어쩌다 나라가 이렇게 됐느냐”는 참담한 심정 속에 있다.

책임 있는 모든 이가 석고대죄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의 정부, 전북도청, 조직위 모두에 잘못이 있다. 손님에게 귀한 선물을 선사한다는 뜻으로 준비한 K팝 콘서트로 체면치레는 했다고 ‘정신 승리’의 태도를 보일 때가 아니다. 아울러 엉성한 준비 때문에 곤욕을 치른 세계 청년들과 노심초사 마음 졸인 그들의 가족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 그 뒤에는 냉철히 잘못을 따져 봐야 한다. 엄정한 ‘징비’가 없으면 과오가 반드시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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