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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소나기가 반가운 우산 장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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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31면

우산 장수, 서울역 광장, 1978년, ⓒ김녕만

우산 장수, 서울역 광장, 1978년, ⓒ김녕만

우산 파는 아주머니에게는 느닷없는 소나기가 더 반가울지 모르겠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의 반짝 수요가 기대되니 말이다. 여기저기서 우산을 찾는 부름에 뛰어다니느라 비를 쫄딱 맞아도 품에 가득했던 우산이 하나둘 줄어드는 재미에 신바람이 난다.

이제는 편의점이 많아져 길에서 우산 파는 사람들도 사라졌지만 70~80년대 서울역 광장은 우산 팔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출발지에선 비가 오지 않았는데 서울역에 내리니 비가 쏟아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승객들 때문이다. 그렇게 한나절 우산을 팔다 보면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날씨가 활짝 개는 것도 순간이다. 우산 파는 엄마를 따라와 비를 맞던 아이가 비로소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학창시절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오후에 엄마가 우산을 들고 학교에 찾아와주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엄마 손을 잡고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면 덩그러니 남은 몇몇 아이들은 서로 멀뚱히 바라보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한순간 가방을 머리에 이고 냅다 달렸다. 죽어라 뛴 것은 비를 맞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부러움을 떨쳐버리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비슷한 처지인 친구들과 서로 물을 튀기며 달리다 보면 우리는 이내 명랑해졌다. 어차피 흠뻑 젖었으니 더는 젖을 일이 없어 마음 편하게 장난치며 깔깔거렸다.

70년대에는 대나무로 살을 만들어 그 위에 파란색 비닐을 씌운 비닐우산이 대세였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우산이 뒤집어지곤 했는데 그럴 때는 바람 부는 방향으로 우산을 갖다 대면 다시 휙 뒤집혀 원위치로 되돌아왔다. 아이들은 우산을 낙하산처럼 폈다 접었다 하는 재미에 까불다가 대나무 살이 툭 부러져 울상이 되기도 했다.

진정한 친구는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같이 비를 맞아주는 친구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가? 비가 오는 날에는 문득 함께 젖으며 천방지축 나대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 생각난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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