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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물난리 지나면 금세 잊히는 재난 대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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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수해는 강우라는 자연의 외력(hazard)과 인간 사회의 대응력(capacity)이 힘겨루기한 결과물이다. 당연히 대응력을 외력보다 크게 해야 수해를 예방할 텐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외력과 대응력의 크기가 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즉, 강우라는 외력은 자연 현상이어서 태생적으로 변동이 워낙 크고, 댐·제방·빗물펌프장·저류지·홍수예경보 등으로 구성된 대응력도 복잡성 등으로 종종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균 개념에서 대응력을 외력보다 크게 만들어야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국가나 지자체일수록 면밀한 분석을 통해 대응력의 평균을 외력의 그것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 불확실성의 영역을 최소화한다. 이 개념으로부터 재해 관리가 출발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이리저리 터지는 수해 양상을 보면서 치수 대응력을 키워온 경제 강국에서 안전 강국을 떠올린 국민은 드물 것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발표만 하고 추진된 대책은 적어
하천 정비에 예산 제대로 안 가
철저히 실행·감시하고 평가해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발표된 대책은 넘치지만 추진된 대책은 빈약해서 그렇다. 매년 이맘때쯤 쏟아져나온 대책들은 신기하게도 두 달쯤 지나면 잊힌다. 관련 정부 부처나 지자체가 발표한 대책들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조목조목 감시하고 평가하는 체계는 정부든 비정부 기구든 전문가 그룹 어디에도 없다. 4대강 보를 철거하느냐 마느냐, 물 관리를 환경부에서 국토교통부로 다시 이관하느냐 마느냐 등을 놓고 논쟁하기에 앞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쏟아져 나온 대책들의 치밀한 실행이고, 지치지 않는 감시이며, 객관적 평가다. 지난 25년간 반복되는 수해와 대책 발표를 보아온 필자에게는 적어도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2020년 최장 장마로 49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기후변화에 따른 풍수해 대응 혁신 종합대책’를 발표했다. 행정안전부는 물론 환경부·국토부·산림청·기상청 등 16개 부처가 3개월간 숙의해 만든 결과물이다. 지금 다시 보니 종합대책의 5대 추진 전략 중에 댐·하천 안전 강화, 특히 기후변화로 증가하는 최근 홍수량을 고려해 하천의 설계빈도를 100~200년에서 최대 500년까지 상향 조정한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극한 강우’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설계 목표의 상향은 절실한 대책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목표와 현실의 괴리에 있다. 2020년 환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통계에 따르면 200년 이상은 고사하고 설계빈도가 100년도 안 되는 국가하천이 20%를 넘는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개선됐을까.

대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수해가 벌어지는 지자체의 예산에 있다. 서울시를 보자. 2019년 6000억 이상이었던 치수 관련 예산이 2022년엔 4200억원 선까지 감소했다. 2020년 2월 ‘정부 일괄이양법’ 시행으로 지자체가 총액으로 예산을 받으면서 하천 사업에 예산을 충분히 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중앙과 지방 정부가 각각 50%씩 투자해 지방하천 사업이 진행됐으나, 지금은 지자체 내부의 다른 사업에 밀려 천대받고 있다고 한다.

근래 한강 본류가 넘치는 경우를 봤나. 대부분의 수해는 도림천과 같은 지류 지방하천에서 발생한다. 한국의 경우 하천의 90%를 지방하천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지방하천의 정비율은 50% 정도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 충북 청주 미호천 참사의 아픔을 계기로 지천 정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해법은 두 가지일 것이다. 중요도가 큰 지방하천부터 국가하천으로 과감히 격상해 국가 예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아니면 비대한 중앙정부의 인적자원을 인센티브와 함께 혁신적으로 지자체에 분산 배치해 지역 하천과 유역 관리를 책임지도록 맡기자.

끝으로 지자체가 예산 투자에 손 놓고 있는 부문을 하나 더 언급하고 싶다. 노후 인프라의 유지 보수가 그것이다. 선출직 지자체장은 신규 사업을 선호하고 중앙정부의 지원 체계는 빈약하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30년 이상 된 노후 인프라가 2018년 기준 30%가 넘고, 2028년에는 60%를 넘을 전망이다. 노후화는 기후변화와는 무관하게 진행된다. 우리 자신의 대응력 약화임을 자각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