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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철근 빼먹은 아파트…그뒤엔 ‘관·건 카르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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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석열 정부가 ‘건설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사에서 철근이 무더기로 빠진 사태의 원인으로 ‘건설산업 이권 카르텔’을 지목하고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지금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루어졌다”며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산업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권·부패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는 어떠한 혁신도, 개혁도 불가능하다”며 “관계 부처는 고질적인 건설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법령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엄정한 행정 및 사법적 제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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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내부에선 윤 대통령이 언급한 이권 카르텔의 기동 축으로 LH의 전관예우를 지목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LH에서 근무할 때는 퇴직자가 있는 업체에 편의를 제공하고, 본인이 퇴직한 후에 해당 업체에 들어가 다시 공사 수주에 도움을 주는 식의 행태가 만연하다”며 “이런 부패·부실의 싹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15∼2020년 LH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과 건설사업관리용역 경쟁입찰 290건을 분석한 결과, LH 전관 영입업체 47곳이 전체 용역의 55.4%(297건), 계약 금액의 69.4%(6582억원)를 수주했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를 통해 건설 이권 카르텔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이러한 총체적 부실은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설 이권 카르텔의 꼭대기에는 공기업과 지자체가 있다. 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 전수조사 결과,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무더기로 확인된 것은 설계 잘못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철근이 구조 계산 잘못 등으로 건설 공사의 근본이 되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빠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전관’의 폐단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술사는 “LH 등 공기업 퇴직자 중 ‘끗발 센 전관’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설계업체의 ‘능력’이 차이 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체 “공무원·공기업 직원 관폭, 건폭만큼 무섭다”

1일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양주회천 A15블록 아파트에서 지하주차장 기둥 보강을 위해 철판을 덧대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국토부는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조사하고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빠져 있다는 결과를 전날 발표했다. [연합뉴스]

1일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양주회천 A15블록 아파트에서 지하주차장 기둥 보강을 위해 철판을 덧대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국토부는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조사하고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빠져 있다는 결과를 전날 발표했다. [연합뉴스]

한 설계업체당 1년에 3건까지 LH가 발주한 설계를 수주할 수 있는데 이때 설계업체의 기술력보다는 전관의 ‘실력’이 수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부실 설계’가 나온다는 얘기다.

LH 아파트의 공사현장에서 철근을 설치한 후에는 LH 직원인 감독관과 시공사의 엔지니어, 그리고 법으로 정한 감리회사가 제대로 철근이 들어가 있는지 삼중으로 체크한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긴 건 이 세 곳이 모두 제대로 일을 안 했고, 특히 최종 감독 책임이 있는 감리가 제 기능을 못 했기 때문이다.

모 건설사의 한 임원은 “설계회사가 감리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역시 LH 전관의 폐단이란 얘기다. 이한준 LH 사장은 “설계, 감리, 시공회사에 LH 전관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아파트 구조 비교

아파트 구조 비교

공기업 직원이 건설사의 협력업체 선정 등에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건설사의 한 직원은 “기술직 공기업 간부의 경우 건설현장에서는 ‘갑 중의 갑’이다”며 “‘이 현장의 이 공정은 이번에 이 업체를 써달라’는 식으로 공기업 간부가 부탁하면 후환이 무서워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건설현장의 현실이고, 실제 회사 규정에 어긋나는 청탁을 들어준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수돗물에서 검은색 이물질이 나오고 있는 경기도 시흥시 은계지구 LH 아파트의 경우 상수도관 납품 업체가 자재 계약 때 LH 담당자에게 부정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지자체 공무원이 건설 이권 카르텔의 정점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 아파트 시행사 대표는 “아파트 공사현장에 해당 지역의 특정 업체를 써달라는 등의 지자체 공무원들의 부탁을 거절하면 해당 지자체는 천 가지의 이유를 들어 인허가를 지연시킨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주택법에 따라 짓는 민간아파트의 경우 해당 지역 지자체가 감리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시행사가 지자체에 예치한 감리 비용을 감리업체에 지불한다. 모 건설사 관계자는 “감리업체가 눈치 볼 곳이 지자체라는 얘기”라며 “정부가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을 뿌리 뽑겠다고 하는데 건폭 중 건설업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바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등의 ‘관폭(官暴)’”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학칙 위반 방치는 범법”=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교권 침해 사례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학생 인권을 이유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는 2학기 중에 교권 확립 내용을 담은 고시가 학교 현장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교육부에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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