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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버킷 챌린지로 즐기는 기부”…루게릭요양센터 희망을 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3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도전합니다. 이 도전에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사람으로 박보검, 아이유, 조원희를 지목합니다.” 

 지난 10일 승일희망재단의 공동 대표인 가수 션의 인스타그램. 이 말을 마친 뒤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션의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에 1만500여개의 ‘좋아요’가 눌렸다. 다음 주자로 지목된 배우 박보검과 가수 아이유, 축구선수 조원희가 각각 ‘인증’ 영상을 올리고 다음 도전자를 3명씩 지목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재유행하고 있다.

아이스버킷챌린지에 참여하는 배우 박보검.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아이스버킷챌린지에 참여하는 배우 박보검.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2023년 부활한 아이스버킷 챌린지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2014년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에 대한 관심과 기부를 위해 미국에서 시작된 이벤트.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2018년 이후 사라졌다. 국내 최초 중증 근육성 희귀질환 환우를 위한 루게릭요양센터 건립을 추진 중인 승일희망재단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되살렸다. 승일희망재단은 경기도 용인시 모현읍에 1000여평(3292㎡) 부지를 마련하고 76개 병상과 진료실, 물리(작업)치료실, 목욕탕 등을 갖춘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전문 요양병원을 지을 예정이다.

하지만 총 203억6000만원에 달하는 건립비용이 문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면서 모금 활동이 위축됐고 그 사이 인건비와 자재 등 건설 비용이 초기보다 30~40% 올랐다. 2020년 완공 예정이던 요양센터 건립은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루게릭요양센터 건립에 1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숨통이 트였지만, 아직도 건축비 20억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승일희망재단은 계획을 조정해 오는 9월 요양센터 착공해 2024년 10월 준공한다는 계획인데 부족한 건립비용을 채우지 못하면 개원은 더 미뤄질 수 있다. 요양센터가 문을 연 뒤 운영자금도 아직은 걱정이다.

아이스버킷챌리진 부활 아이디어를 낸 건 공동대표 션이었다고 한다. 직접 첫 주자로 나섰다. 박성자(56)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는 “션 대표는 지금까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오히려 자비를 들여 기부 활동에 나서 준 고마운 사람”이라며“우리 재단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보여주기가 아닌 실천하는 기부에 나서 준 션 대표의 기여가 컸다”고 말했다. 션은 아내인 배우 정혜영과 승일희망재단의 고액 기부자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이사가 19일 서울 강남구 유니온센터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이사가 19일 서울 강남구 유니온센터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승일희망재단은 프로농구 선수 출신의 박승일(52)씨가 2011년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그는 역대 최연소 프로농구 코치로 선임되던 2002년 루게릭병이 발병했다.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되면서 결국엔 온몸이 마비되는 병. 간병인이 24시간을 옆에서 인공호흡기를 확인하는 등 환자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전문 간병인을 구하기 어려워 주로 가족이 간병을 책임지기 때문에 경제·사회적 문제 등을 겪는 일도 부지기수다. 승일씨는 루게릭병을 “가족까지 말려 죽이는 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가 루게릭병을 앓는 환우들을 위한 루게릭요양병원을 짓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 이유다. 승일씨도 온몸이 마비돼 가족들의 간병을 받고 있다. 현재는 눈 깜박임으로 세상과 소통하던 것도 힘겨워진 상태다. 평범한 주부였던 박 이사는 막냇동생인 승일씨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승일희망재단의 살림을 맡았다.

'승일희망재단'의 공동 대표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전직 농구코치 박승일씨와 가수 션. 중앙포토

'승일희망재단'의 공동 대표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전직 농구코치 박승일씨와 가수 션. 중앙포토

즐거운 기부, 루게릭 환자 돕는다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에는 그동안 많은 유명인이 힘을 보태왔다. 2012년부터 유명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기금마련 콘서트를 12차례에 걸쳐 열었다. 공동대표인 션이 소속된 그룹 지누션, 윤도현, 양동근, 소녀시대, 타이거JK 등 유명 가수들이 앞다퉈서 무보수로 공연에 참여했다. 무대 연출, 포스터 제작 등 공연 스태프들도 재능기부 방식으로 도왔다. “관람이 기부”라는 입소문에 매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박 이사는 “환우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리면서 기부를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며 “루게릭병을 정확하게 알리면서 즐겁게 기부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서 콘서트와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도입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기간 콘서트 개최를 중단했는데 ‘콘서트는 언제 다시 하느냐’며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서 요양센터 착공식 등이 끝나면 상황을 봐서 다시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이사가 19일 서울 강남구 유니온센터 사무실에서 재단에서 판매하고 있는 팔찌를 보여주고 있다. 김종호 기자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이사가 19일 서울 강남구 유니온센터 사무실에서 재단에서 판매하고 있는 팔찌를 보여주고 있다. 김종호 기자

 정기후원 기부자들의 이름을 요양센터 벽돌에 새기고 커피 한 잔 값, 등산·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 스포츠를 이용한 기부 캠페인도 추진한다. 팔찌와 양말, 티셔츠, 에코백 등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상품은 모두 승일희망재단 직원들이 발품을 팔아 원단 등을 직접 골라서 제작한다. ‘실용적이고 예쁜 디자인’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연예인들의 착용 인증 사진이 줄을 이을 정도다. 지난 12년간 모인 기부금이 80억원에 달한다. 박 이사는 “직원 상당수가 20~30대 젊은 층이라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다”며 “그래선지 젊은 층의 소액 기부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이사(왼쪽 세 번째)와 직원들이 19일 서울 강남구 유니온센터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이사(왼쪽 세 번째)와 직원들이 19일 서울 강남구 유니온센터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재단은 기부금 사용 내역을 철저히 공개하고 있다. 승일희망재단 홈페이지의 재정·경영 공시엔 ‘등기우편 발송 3620원’ ‘주유할인 환급 400원’ ‘우체국 방문 주차비(공모사업 제출서류 발송) 4000원’ 등 10원 단위 지출까지 공개한다. 기부금도 1원 단위까지 기재한다. “기부받은 돈이니 투명하게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게 박 이사의 설명이다.

아이스버킷챌린지에 참여하는 가수 아이유.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아이스버킷챌린지에 참여하는 가수 아이유.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박 이사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응원하고, 참여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요즘은 기부로 대신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기부금을 목적으로 하는 행사긴 하지만 가끔 아쉽기도 해요.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얼음물을 맞으면서 루게릭병 환우의 고통을 간접 체험한다는 의미가 있거든요. 또 기부금액 등이 공개되면 후속 주자가 부담스러워 릴레이를 포기하기도 해요. 기부도 좋지만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꼭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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