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3년간 루게릭 견딘 내 동생, 노래로 격려해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승일희망재단의 박성자 이사는 “무대에서 인사말을 할 때 가장 떨린다”고 했다. [사진 승일희망재단]

내 이름은 박성자(48). 루게릭 투병 중인 박승일(44) 전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코치의 누나이자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해 2011년 설립된 ‘승일희망재단’의 상임이사다. 내 삶은 평범했다. 어릴 적 꿈이 전업주부였을 정도니까.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13년 전 동생에게 루게릭이 찾아왔다. 정신은 멀쩡한데 온몸이 굳어버리는 잔인한 병은 동생과 우리 가족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2m가 넘는 건강한 운동선수였던 동생은 작은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눈 깜빡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승일이가 병상에서도 꿈을 꾸더라.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이라는 희망을 눈 깜빡임으로 매일 얘기했다. 그의 간절한 마음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단 설립에 뛰어들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생의 손과 발이 돼 움직였다. 무작정 덤볐던 탓일까. 재단 설립에만 1년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모금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루게릭 환우 가족이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돈’ 얘기까지 이끄는 것은 정말 어렵더라.

 그러다 가수 션이라는 산타를 만났다. 거액의 기부금을 낸 그에게 재단의 공동대표를 제안했고 그는 오랜 고민 끝에 흔쾌히 재단의 얼굴이 돼 줬다.

 루게릭병을 알리고 병원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루게릭 희망콘서트’도 꾸준히 열었다. 지금까지 7번의 콘서트를 성황리에 끝냈다. 모든 출연자들은 재능기부 형식으로 기꺼이 콘서트에 동참해줬고 관객들은 함께 희망을 노래했다. 콘서트를 열 때마다 동생은 앰뷸런스에 몸을 싣고 구급차 침대에 몸을 묶은 채 관객과 하나가 됐다. 그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져 가는 모습이 담긴 현장에 있는 것을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공연이 끝난 뒤 동생에게 오는 문자는 모든 피로를 한 방에 날린다. ‘고마워 수고했어’.

 그런 승일이가 지난 콘서트에서 ‘다음부터는 못 올지 모른다’고 얘기하더라. 한 자세로 집에서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5시간 넘게 아픔을 참는 것이 곤욕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13년의 고통을 잘 견뎌준 동생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동생의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1990년대 추억의 노래를 통해서다. 노래는 그 시절의 냄새까지 떠올리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힘이 있다. 90년대를 풍미한 인기 가수들이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최고의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의 도움도 받았다. 다음 달 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선 8번째 희망콘서트 ‘추억으로 가는 가요 톱 텐’이 열린다.

 동생에게도, 함께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따뜻한 선물이 되길 희망한다. 루게릭도 힘들지만 세상엔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병이 많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요양병원이란 희망과 공감해줬던 많은 사람의 관심 덕에 동생은 버틸 수 있었다. 작은 희망이 모여 하나가 된다면 불가능은 없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14일 박성자씨와의 인터뷰를 그의 시각으로 재구성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