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점심 쪼개 강의, 매뉴얼까지…남부지법 '금융법' 열공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남부지법이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는 금융·증권 범죄나 분쟁 관련 재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소속 법관 등을 대상으로 한 자본시장법 연속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범죄중점청인 서울남부지검을 이웃으로 둔 남부지법은 관련 분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형사재판 업무 참고서를 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남부지법은 지난달 1일부터 재판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자본시장법 전반에 관한 집중 강의를 편성했다. 소속 판사와 법원 공무원은 물론 변호사·법무사 등 외부인에게도 개방한 이 강의는 오는 19일까지 총 6회에 걸쳐 1시간 30분씩 진행된다. 남부지법은 수강률을 높이기 위해 강의 시간을 점심시간으로 잡았다.

서울남부지법이 최근 소속 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자본시장법 연속 강의를 편성하는 등 금융·증권 사건 관련 재판 역량 강화에 나섰다. 사진은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법 본관의 모습. 뉴스1

서울남부지법이 최근 소속 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자본시장법 연속 강의를 편성하는 등 금융·증권 사건 관련 재판 역량 강화에 나섰다. 사진은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법 본관의 모습. 뉴스1

 강사로는 금융·증권법 분야 전문가인 김홍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홍동균 금융감독원 수석조사역을 섭외했다. 김 교수와 성 교수는 자본시장법 전반에 관한 이론과 사례별 법적 쟁점 등을 주제로, 홍 수석조사역은 불공정거래 조사 관련 실무에 대해 강의한다. 남부지법은 이번 강의 내용을 포함, 자본시장법 관련 형사재판 지식을 망라해 금융·증권사건 관련 형사 재판업무 관련 매뉴얼을 발간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남부지법이 자본시장법 하나만으로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편성한 데엔 이유가 있다. 최근 금융·증권 관련 사건 접수 건수가 폭증하는 데다 그 유형도 복잡하고 다양해지자, 해당 분야에 관한 전문 지식을 쌓거나 최신 범죄 트렌드를 공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소속 법관들 사이에 형성됐기 때문이다. 최근 강의를 수강한 한 판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주로 다루는 형사합의부 소속 판사들 일부도 관심을 갖고 강의를 듣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이 지난 5월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합동수사부로 정식 직제화하고, 이달 안으로 가상자산합동수사단(팀) 신설을 추진하는 것도 법원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검찰이 처리하는 사건이 결국 법원으로 넘어오는 만큼 판사도 관련 지식을 갖춰놓아야 효율적인 재판 진행에 무리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올해 남부지검은 코인을 투자계약증권으로 보고 관련 사기 범죄에 자본시장법을 최초로 적용한 사건(테라·루나 폭락 사건), 차액결제거래(CFD)와 통정매매를 통한 주가조작 사건(SG증권발 주가조작 사건) 등 기존에 없던 신종범죄를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오는 12일에는 입법 미비 탓에 법조계에서 다양한 법 적용 사례와 판례가 쏟아지고 있는 가상자산의 개념·특성·규제방안에 대해 김홍기 교수의 강의가 예정돼 있다. 가상자산의 경우 증권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현행 자본시장법 적용이 어렵고, 가상자산 거래만을 다루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도 지난달 30일에야 국회를 통과해 시행일까지 약 1년간 규제 공백 상황이다. 이 때문에 남부지법과 남부지검 사이에는 최근 코인 거래 관련 시세조종(MM)이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의혹 등 전례 없는 수사 과정에서의 압수수색영장 기각 등을 두고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법원이 신종 금융·증권·가상자산 관련 범죄에 관해 선제적으로 연구하고 처리 기준을 세운다면 검찰 입장에서도 보다 신중하게 법리를 검토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