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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인력난 뜻밖 원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10%이상 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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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흉부외과 전문의가 수술실을 떠나 개업하는 게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응급의학 전문의가 응급실 밖으로 나와서 개업한다? 상상이 잘 안 되고 외국에 그런 예를 볼 수 없지만, 한국에선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 의사들의 '탈(脫) 필수의료' 행렬이 응급실까지 미쳤다.

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총 2181명이다. 종합병원(1387명)과 상급종합병원(455명)에 몰려있고, 동네의원에도 213명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개원한 의사가 최대 350~400명 정도로 추산된다”며 "근무 환경은 나빠지고 개원이라는 선택이 생기면서 현장 이탈이 심화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찾은 경기 성남시 판교연세의원에 환자들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다. 황수연 기자

지난 8일 찾은 경기 성남시 판교연세의원에 환자들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다. 황수연 기자

 지난달 8일 오후 5시30쯤 찾은 경기 성남시 판교연세의원(EM365 급성기클리닉)에는 응급의사 4명이 환자를 보고 있었다. 이 병원은 첫번째 진료과목으로 '응급의학과'를 내세운다. 동네 경증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게 목표다. 가톨릭대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부교수로 있던 신형진 원장이 2016년 개업했다.

신 원장은 “밤새우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개원 생각을 하게 됐다”라며 “보통 개업하면서 응급의학과를 내세우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미용 등을 내세운다. 우리는 경증 응급질환 치료가 우선이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라는 점을 알린다”라고 설명했다. 열상ㆍ외상ㆍ타박상 등 응급실에서 응급환자 분류등급(KTAS) 4,5단계 해당하는 환자들이 주로 온다. 감기ㆍ두통ㆍ위염ㆍ발열 환자도 찾는다. 지난 5월 한달 간 500개 넘는 질환(상병 코드 기준)의 환자 6684명이 다녀갔다. 물론 비만, 도수 치료도 병행한다.

처음엔 간호조무사 2명, 응급구조사 2명을 두고 홀로 시작했는데 환자가 많아지며 뜻 맞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3명을 더 찾았다. 개원 후 7년간 365일 쉬지 않고 오전 9시~오후 9시 환자를 받았다. 30명의 방사선사ㆍ간호사ㆍ간호조무사ㆍ물리치료사ㆍ응급구조사 등이 2교대로 근무한다. 수도권에 비슷한 의원 6곳이 더 있고, 곧 8곳이 문을 연다.

응급전문의 개업 러시가 대형병원 응급실의 의사 인력난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의학과 개원의가 아무리 지역에서 경증 환자를 본다해도 응급실로 몰려드는 환자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비만 치료나 미용 시술로 수익 창출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원을 선택한 동료들을 보면 훨씬 덜 일하고, 더 많이 버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일부에선 갈 데를 찾기 어려운 경증응급환자의 수요를 메워줄 것이라고 본다. 급성 방광염 환자 정모(35·여)씨는 “현충일에 문 연 병원을 찾다가 여기에 왔고, 오늘(지난달 8일) 또왔다. 비싸고 오래 기다리는 큰 병원 응급실보다 낫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온 초등생(8) 환자는 X선을 촬영한 뒤 단순 염좌(근육을 싸고 있는 막이나 인대에 상처가 난 것) 진료를 받았다.

이형민 회장은 “일선 병원에서 중증도가 낮은 환자를 커버해주면 그만큼 대형병원에 여력이 생긴다”라며 “전문의들이 급성기클리닉 개원을 희망한다면 의사회 차원에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119구급대원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고 있다. 김종호 기자

119구급대원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고 있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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