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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많던 17세 소년 나엘"…佛, '인종차별' 사흘째 시위 격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은 아랍인의 얼굴을 한 어린아이를 봤고, 그의 목숨을 빼앗았다."

지난 27일 경찰 총에 맞아 사망한 알제리계 프랑스 소년 나엘 M(17)의 어머니는 29일(현지시간) 파리 서쪽 외곽 도시 낭테르에서 열린 추모 행진에서 경찰의 고질적인 인종차별적 행태를 이렇게 규탄했다.

지난 27일 오전 낭테르에서 렌터카를 몰던 나엘은 교통법규 위반으로 검문을 받던 중 도주하려다 경찰이 쏜 총에 사망했다.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서쪽 외곽 도시 낭테르에서 경찰 총에 17세 소년 나엘이 숨지는 일이 발생하자 시민들이 경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서쪽 외곽 도시 낭테르에서 경찰 총에 17세 소년 나엘이 숨지는 일이 발생하자 시민들이 경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나엘의 어머니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나는 경찰 시스템을 탓하는 게 아니다. 오직 내 아들을 죽인 그 한 사람에게 화가 난다"며 "아이를 차에서 나오게 하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죽일 필요가 없었다"고 호소했다.

미혼모 가정에서 외동아들로 자란 나엘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배달 기사로 일했다. 나엘의 할머니는 "정비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며 "가족에게 사랑을 잘 표현하던 착하고 친절한 아이"라고 나엘을 소개했다. "올곧은 가치관을 가진 잠재력 있고 사회적인 친구"였다는 주변 지인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프랑스24 등에 따르면 나엘의 고향인 낭테르를 비롯해 수도 파리와 리옹 등 프랑스 도시 12여곳에서 경찰을 규탄하는 시위가 사흘째 격화하고 있다. 시위대는 "나엘을 위한 정의 구현"을 외치며 경찰서와 시청 등 국가기관에 돌과 화염병 등을 던졌다. 거리에 주차된 자동차와 쓰레기통 등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28일 파리 등 수도권에서 경찰 추산 6200명이 참여한 행진은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일부가 경찰을 향해 무력을 행사하고 경찰은 최루가스를 분사하며 대치하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 이 과정에서 현재까지 약 180명이 체포됐고, 경찰 170명이 다쳤다.

프랑스 파리 근교 낭테르에서 교통단속 중 경찰에 의해 숨진 17세 나엘이 사망한 뒤 30일(현지시간) 시위가 격화하며 터진 폭죽에 경찰이 멈춰서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근교 낭테르에서 교통단속 중 경찰에 의해 숨진 17세 나엘이 사망한 뒤 30일(현지시간) 시위가 격화하며 터진 폭죽에 경찰이 멈춰서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9일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애도하면서도 "공공기관에 대한 폭력 행사는 정당화할 수 없다"고 과격시위에 자제를 촉구했다.

경찰은 소요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같은 날 오후 파리 등 각지에 4만 명을 배치했다. 오후 9시 이후 수도권 일드프랑스 광역주 일대의 버스와 트램 운행을 일시 중지했고, 클라마르·뇌이쉬르마른 등 일부 지역서 야간 통금을 시행했다. 콩피에뉴에선 미성년자의 야간 외출을 제한했다. 30일 현재 프랑스 전역에서 폭력 시위 혐의로 구금된 이들은 667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경찰의 거짓 해명 정황이 드러나며 대중 분노에 불을 지핀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은 "나엘이 경찰관을 향해 차를 몰고 달려들어 총을 쐈다"고 주장했지만, 나엘이 경찰들을 향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출발하는 장면만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상에 퍼졌다. 검문 중이던 경찰이 나엘을 향해 "네 머리에 총알이 박힐 거야"라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29일 프랑스 파리 서쪽 외곽에 있는 마을 낭테르에서 시민들이 경찰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29일 프랑스 파리 서쪽 외곽에 있는 마을 낭테르에서 시민들이 경찰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사망 소년이 알제리계 이민자여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로 번지는 양상이다. 앞서 2005년 흑인 10대 소년 2명이 파리에서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감전사하면서 이민자 사회에 분노가 확산한 바 있다. 당시 폭동은 2달간 이어지며 약 6000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가디언은 "이번 시위는 사망사건 자체의 충격보다 아직도 인종차별적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데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와 절망에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프랑스 축구 스타 킬리안 음바페도 트위터에 "나의 프랑스가 아프다.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족에게 애도를 표했다.

총을 쏜 경찰관(38)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29일 기자회견에서 "해당 경찰관은 총기를 사용하기 위한 법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부검 결과 나엘의 사인은 왼팔과 흉부를 관통한 총알 한 발이었으며, 운전한 차 안에서는 마약이나 위험한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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