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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질 테러’ 당해도…자리 안빼고 버티는 알박기 텐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8면

지난 22일 경북 청도군 운문댐 하류보 야영장에 설치돼 있는 텐트. 누군가 찢어놓은 텐트를 청테이프로 수선한 모습이다. 이 텐트는 찢어진 텐트 20여 동 중 하나다. 김정석 기자

지난 22일 경북 청도군 운문댐 하류보 야영장에 설치돼 있는 텐트. 누군가 찢어놓은 텐트를 청테이프로 수선한 모습이다. 이 텐트는 찢어진 텐트 20여 동 중 하나다. 김정석 기자

지난 22일 경북 청도군 운문댐 하류보 야영장. 평일 낮이었지만 10여 명의 사람들이 텐트를 쳐둔 채 음식을 나눠 먹거나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사이에 한 검은색 텐트가 눈에 띄었다. 다른 텐트와 달리 겉에 포장용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발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찢어진 부분을 테이프로 붙여 수선한 상태였다. 텐트 바로 앞 방풍막도 예리한 도구로 찢어져 너덜너덜한 채였다. 검은색 텐트 인근에는 폭삭 내려앉아 방치된 텐트도 보였다.

최근 운문댐 하류보 야영장에 누군가가 텐트 20여 동을 흉기로 찢어놓는 일이 있었다. 야영장에 장기간 텐트를 설치해두는 이른바 ‘알박기 텐트’들이 대상이었다.

수도시설 근처나 나무 그늘 등 ‘명당’ 자리에 텐트를 쳐놓고 장기간 자리를 선점하는 알박기 텐트는 다른 캠핑족들에게 얌체 소리를 듣는다. 이런 텐트들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다는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이 “속이 시원하다” “알박기 텐트 주인은 반성해야 한다” 등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의 텐트를 훼손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다. 경북 청도경찰서는 지난 1일 오후부터 2일 오전 사이 누군가가 알박기 텐트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용의자를 찾아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해 처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범행이 일어난 지 3주가 넘은 시점, 흉기에 찢어진 텐트 중 대부분은 자진 철거한 상태였다. 야영장 바닥에 잔디가 자라지 않은 부분이 장박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흉기에 찢어진 텐트 20여 동 중 2~3동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청도군 운문면 관계자는 “알박기 텐트를 강제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지만 법적인 근거가 없다. 소유주 동의가 없으면 텐트 철거는 불가능하다”며 “지자체 입장에서는 소유주에게 철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야영장 알박기 텐트를 제재할 법적인 근거가 없어 누군가 텐트를 찢어놓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북 영천시는 알박기 텐트를 모두 자진 철거할 때까지 야영장을 일시 폐쇄하는 고육책까지 내놨다. 운문댐 하류보 야영장처럼 무료로 운영되고 있는 임고면 영천댐공원과 임고강변공원 야영장에 알박기 텐트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다. 지난달 기준으로 이들 야영장에는 알박기 텐트가 80여 동에 달했다.

반면 해수욕장은 야영장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달 말부터 해수욕장에 텐트나 캠핑 시설을 장기간 설치해둘 경우 이를 철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20일 해수욕장에 무단 방치된 물건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28일부터 소유자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지자체는 철거 장소·일시·이유, 보관 장소 등을 지자체 홈페이지 등에 공고하고 물건을 철거할 수 있다. 공고한 날부터 한 달이 지나도 소유자가 찾아가지 않으면 지자체는 물건을 매각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

캠핑 애호가 양정석(38)씨는 “무료 야영장을 마치 자기 땅인 것처럼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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