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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더 공격적으로 만들 것…용병 반란 '게임체인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군 시설에서 병력을 철수하며 시민들의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군 시설에서 병력을 철수하며 시민들의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집권 이래 가장 심각한 위협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게임 체인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전쟁 중 발생한 러시아 용병 기업의 무장 반란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찰스 쿱찬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가 내린 진단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담당선임국장을 지낸 쿱찬 교수는 24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사이의 불화가 일종의 위장전술일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쿱찬 교수는 둘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동안 프리고진이 군부는 비난할지언정 크렘린을 건들진 않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러나 "어제 성명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 엘리트들의 개인 영광과 금전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규정했다"면서 "전쟁에 대한 푸틴의 명분에 흠집을 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찰스 쿱찬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모스크바로의 진격을 멈춘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로부터 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역사적 사례로 볼 때 바그너 그룹이 살아남는 것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앙포토

찰스 쿱찬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모스크바로의 진격을 멈춘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로부터 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역사적 사례로 볼 때 바그너 그룹이 살아남는 것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앙포토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유럽주둔 미군 사령관이었던 벤 호지스 예비역 중장 역시 중앙일보 e메일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이 푸틴에게는 분명 최대 위기라고 봤다. 러시아 군인들은, 일단 용병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공을 세운 전우를 향해 총구를 겨누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군 내부에선 이 전쟁의 대의명분을 놓고 혼란이 커졌을 거란 이야기다.

호지스 예비역 중장은 "이번 반란은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처한 끔찍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 쿱찬 교수는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이 우크라이나 전황을 바꿀 '게임 체인저'까지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봤다.

바그너 그룹이 남부 로스토프나노두 군 시설을 장악하고 모스크바를 향해 북진하는 동안, 다른 군부대나 정보기관, 시민사회 등에서 반란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푸틴에게서 등을 돌리는 국가 행위자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푸틴에게 직접적인 위기 상황이 되긴 힘들다"고 봤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군 시설에서 철수하면서 환호하는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군 시설에서 철수하면서 환호하는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사회 역시 현재 러시아 사태에 개입하거나 이를 이용하기보다는 당분간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다.

이날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 무장 반란 사태에 대해 관련 부처의 보고를 받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지지를 재확인했다"는 메시지만 내놨다.

이에 대해 쿱찬 교수는 "워싱턴과 베를린, 파리, 브뤼셀이 푸틴을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가 내전으로 분열되고 극심한 혼란이 시작되는 것도 환영하지 않는다"라며 "현재로써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호지스 예비역 중장도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온 중국 역시 혼란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며 현상유지를 바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벤 호지스 미 예비역 중장은 "이번 바그너 그룹의 반란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처한 끔찍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포토

벤 호지스 미 예비역 중장은 "이번 바그너 그룹의 반란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처한 끔찍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포토

이날 프리고진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모스크바로의 진격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쿱찬 교수는 이런 결정이 푸틴을 앞으로 더 공격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016년 튀르키예에서 쿠데타가 실패한 뒤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립 언론을 폐쇄하고 현실뿐 아니라 상상 속의 적까지 단속하는 등 강압적인 정치를 폈다"면서 "러시아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봤다.

또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봤다.

쿱찬 교수는 바그너 그룹을 과거 오스만제국의 용병 근위대인 예니체리에 비유했다. 술탄 직속으로 엄청난 명성을 지닌 정예 부대였지만, 19세기 초 왕실에 반발해 이스탄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진압된 뒤 해체됐다.

그는 역사적으로 한번 자신에게 창을 겨눴던 부대를 그대로 놔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하면서 "바그너 그룹 역시 살아남는 것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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