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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청소비만 225억 썼는데…빗물받이, 담배꽁초 수북했다

중앙일보

입력

20일 오후 강남역 인근의 빗물받이에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 사진 정상원 인턴기자

20일 오후 강남역 인근의 빗물받이에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 사진 정상원 인턴기자

서울시가 장마철을 앞두고 22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내 빗물받이를 모두 청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서울 강남역 일대 등에 설치된 빗물받이에는 여전히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쌓여 있는 등 관리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쓰레기로 인한 빗물받이 막힘 현상은 지난해 여름 침수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바 있다.

22일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19일 환경부 주관 회의에서 빗물받이 관리, 맨홀 추락 방지 시설 설치 현황을 보고했다. 지난해 침수 피해가 컸던 서울시는 올해 4~5월 두 달 동안 시 전역의 빗물받이 54만여 개를 모두 한 차례 이상 점검하고 청소를 마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수해 이후 빗물받이 청소에 225억원, (빗물받이와 연결된) 하수관로 청소에 680억원 등 총 900억원의 예산을 썼다”고 말했다.

여전히 막혀있는 빗물받이들  

19일 오후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일대의 모습. 지난해 8월 8일 세 모녀 사망 사고가 일어난 반지하 주택 창문(왼쪽). 사고 현장 인근 빗물받이는 마루 바닥 마감재로 덮여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19일 오후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일대의 모습. 지난해 8월 8일 세 모녀 사망 사고가 일어난 반지하 주택 창문(왼쪽). 사고 현장 인근 빗물받이는 마루 바닥 마감재로 덮여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중앙일보 취재팀은 장마철을 앞두고 빗물받이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19~2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강남역 일대 빗물받이 20개 소를 조사했다. 그 결과, 신림동의 반지하 세모녀 사망 사고 현장 반경 50m 내 빗물받이 10개소에는 평균 20개비의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빗물받이가 마룻바닥 마감재로 덮여 있는 곳도 있었다.

출·퇴근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 일대 빗물받이 10개소에는 신림동보다 더 많은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흙과 뒤엉켜 빗물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는 곳도 있었다. 강남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환경미화원 A씨는 “청소를 해보면 빗물받이 관리 빈도가 늘어난 건 느껴지는데, 쓰레기 투기량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빗물받이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고 수방모래함은 텅 비어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빗물받이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고 수방모래함은 텅 비어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충분하지 않아 시민들이 배수관로에 담배꽁초 등을 버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강남역 인근에서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는 엄모(58)씨는 “거리에 쓰레기통이 많이 줄었는데, 차라리 사람들이 (빗물받이에) 쓰레기를 투기하지 않도록 시 차원에서 쓰레기통을 늘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조만간 시내 자치구들에 주요 지역의 쓰레기통 설치량을 늘리라고 권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방모래함도 텅 비어…비 뉴스 볼 때마다 두렵다”

25일부터 장마가 시작될 것으로 예고됐지만, 주민들은 침수 피해에 대한 대비가 여전히 부실하다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신림동서 세탁소를 40년째 운영해온 김모(70)씨는 "지난해 이후 달라진 건 근처에 수방모래함이 하나 생겼다는 건데 그마저도 사람들이 모래주머니를 가져가 텅 비어버렸다"며 "비가 오면 저 조그마한 함에 든 모래주머니로 막으라는 것도 터무니없는데, 그마저도 내용물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수해 3번 겪었는데, 지난해엔 1층 세탁소 허벅지까지 빗물 순식간에 차올라 재산 피해가 심했다"며 "업무용 차량도 쓸 수 없게 됐고 세탁 기구들이 고장 났지만 별로 보상받지 못했다, 비가 많이 올 거란 뉴스를 볼 때마다 두렵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그나마 많은 시 예산을 편성할 수 있어,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빗물받이 전수 점검을 마쳤다. 반면 부산광역시와 대전광역시는 행정안전부가 고시한 침수 위험 지역이 각각 16개, 4개 지구가 있음에도 빗물받이 점검률은 이달까지 각각 6.6%, 9.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시 관계자는 “빗물받이 점검이 의무사항은 아니었다”며 “정부 차원의 관련 지원금이 없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름철 앞두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시설 관리는 각 지자체가 해야 하지만, 기후변화 시대에 침수 등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지자체 대응 능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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