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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의 시선

조희연의 시정연설은 왜 무산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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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정책과 행보 중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두 아들이 외고를 나왔으면서 외고 폐지를 주장한다거나, 교육부가 집행한 자사고 지원금을 10년 동안 학교에 주지 않은 점 등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조 교육감의 책무는 빈틈없이 수행돼야 하며, 그렇기에 그가 지닌 권한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교육감 시정연설이 여야 합의 없이 직전에 취소된 것은 지난주가 처음이었다. 시장과 교육감은 보통 예산안(추경 포함) 제출과 함께 시정연설을 한다. 예산안 설명이 주이지만, 시정 전반에 대한 의견도 피력한다. 하지만 지난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선 조 교육감의 시정연설이 갑자기 취소됐다. 시의회 측이 연설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조 교육감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서울교육감 연설 사상 첫 취소
민주당이 만든 조례 52조 발목
표현의 자유 침해 조항 없애야

임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출신 김현기 의장이 원고를 미리 검토한 뒤 입맛에 맞지 않아 불허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초유의 시정연설 검열 사태”라고 꼬집었다. 반면 김종길 국민의힘 대변인은 “추경 예산안을 설명하는 자리인데 시의회와 법적 분쟁 중인 기초학력보장조례에 대한 일방적 변론을 하려 했다”며 “수업시간에 수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시장·교육감의 시정연설은 국회법 84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달리 법률에 정확히 명시돼 있지 않다. 서울시의회의 경우엔 회의규칙 65조에 ‘예산안이 제출된 때에 시장과 교육감으로부터 설명을 듣는다’고만 돼 있다. 박성준 시의회 의사담당관은 “(시장·교육감) 시정연설은 회의규칙에 의거해 여야 합의에 따라 관행적으로 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예산안과 관련 없다고 국회의장이 사전 검열하거나 취소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교육감의 시정연설은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일단 시정연설의 근거가 되는 회의규칙의 다른 조항(15조)을 보면 ‘의장은 의사일정과 안건 상정을 결정’하게 돼 있다. 시정연설도 일종의 ‘안건’으로 본다면 시정연설 실시 여부는 의장 뜻에 달렸다.

또 다른 근거는 시정연설을 ‘발언’으로 볼 경우다. 이때는 상위법령인 기본조례가 적용된다. 52조에는 ‘시장·교육감의 발언은 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받지 않으면 의장이 중지·퇴장을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연설을 ‘안건’으로 볼 것이냐는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연설은 발언의 일종이므로 기본조례 52조는 더욱 직접적인 구속력을 갖는다. 의장의 시정연설 취소는 조례상으론 적법했다는 이야기다.

조례상 하자가 아니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사실 기본조례 52조는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시장·교육감의 발언 제한은 지방자치단체의 대표자가 지방의회에 출석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지자체장의 진술권(지방자치법 42조 1항)과 대립한다. 넓게 해석하면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21조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상위법과 다툼의 소지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조항을 만든 주체가 민주당이란 점이다. 2021년 12월 절대다수(110석 중 99석)를 차지했던 민주당이 오 시장을 겨냥해 제정했다. 당시 그가 질의응답 도중 퇴장한 사건을 빌미로 “시민의 대표인 의회를 존중하도록 하겠다”며 발의했다.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오 시장에 대한 ‘괘씸죄’로 만든 법안이 결국 자기 진영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조례가 있는 한 국민의힘이 다수인 시의회에선 조 교육감의 발언은 언제든지 제한될 수 있다. 앞으로 조 교육감은 사전에 원고를 주지 않거나, 실제 말하려는 내용과 다른 ‘가짜’ 연설문을 제출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원고에 없는 속마음을 진실로 이야기하다 자칫하면 52조에 의해 제지될 가능성도 있다.

1857년 런던 중앙형사법원에선 배심원 두 명이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 자격을 박탈당한 일이 있었다. ‘종교모독금지법’을 위반해서다.(『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은 “진실을 밝히면 처벌받고 거짓을 말하면 이익을 보는 모순된 질서가 존재한다”며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는 법과 제도, 과거의 유물인 박해의 구습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166년이나 지났지만 서울시의회엔 여전히 ‘박해의 구습’이 존재한다. 그것도 자유가 국정철학인 윤석열 정부의 여당에서 말이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사전 검열 의혹 같은 논란을 만들지 않아야 하며, 민주당은 과거에 반민주적 법안을 만든 것부터 반성·사죄해야 한다. 그다음엔 여야 합의로 52조를 폐지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