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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원배의 시선

차라리 공영방송 민영화가 낫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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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논설위원

김원배 논설위원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권고하자 KBS에선 반발이 터져 나왔다. 지난 5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성명을 내고 "수신료 분리징수는 어떠한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에도 기대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봉사하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아름다운 말이지만 과거 정부에서 제대로 실현됐는지 묻고 싶다. 결과적으로 편파방송 시비만 커진 것이 아닌가.

김의철 KBS 사장(가운데)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의철 KBS 사장(가운데)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어준이 TBS에서 뉴스공장을 장기간 진행한 것은 공영방송이 특정 정파의 전리품이 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책 『정치 무당 김어준』의 제3장 제목이 ‘민주당을 장악한 김어준 교주’다. 강 교수는 진보는 ‘보수의 김어준’을 용인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남의 행동을 용인할 수 없다면 나 역시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

공영방송, 정권의 전리품 전락
KBS 신뢰 하락, 분리징수 불러
민영보다 공정한지 자성해야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진보의 스피커로 볼 수 있는 인물들이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의 진행자 자리를 꿰찼다. 당연히 보수층에선 이런 프로그램과 KBS를 신뢰하지 않는다. 트루스가디언과 한국여론평판연구소의 지난 3월 조사에서 KBS 뉴스 보도의 공정성을 묻는 말에 35%가 '공정', 59%가 '불공정'이라고 응답했다.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해서는 66%가 찬성했다.

 15일 발표된 데일리안 여론 조사에 따르면 분리징수 찬성은 58.2%, 반대는 31.2%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77.2%,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36.9%가 분리징수에 찬성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42.4%)보다 찬성 의견이 높게 나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대체로 KBS에 대한 불만과 수신료 분리징수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KBS를 보지 않는데 왜 수신료를 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지난 8일 김의철 KBS 사장의 기자회견에서 KBS 측은 통합징수의 효율성과 적법성만 강조했을 뿐 신뢰 회복에 대한 가시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김 사장은 “분리징수가 철회되면 사퇴하겠다”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마치 거래를 시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현재 연 6200억원의 수신료가 걷히는데 앞으로 1000억원대로 준다고 하니 분리징수는 KBS 입장에서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분리징수에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분리징수에 대한 여론에 나빴다면 대통령실에서 쉽게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분리징수 뒤에 있는 시청자의 불만을 읽어야 한다.

 KBS 스스로 방만 경영을 해소하고 신뢰도를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파업과 탄핵을 거치면서 KBS나 MBC는 전국언론노조 산하 본부가 다수 노조로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한직으로 밀린다. 이런 구조에선 인력이 제대로 활용될 수 없다. 내부의 탕평 인사가 필요하다. 공영방송 보도국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도록 해야만 다양한 시청자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공영방송의 틀을 지킬 수 있다.

 분리징수가 시행되면 사실상 수신료 폐지 수순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이때는 당연히 공영방송의 운영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 단계에서 KBS의 주장이 제대로 반영되려면 지금부터라도 변화해야 한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뉴스1]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뉴스1]

 현재의 구조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장악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공영방송이 비대하다. 군사 정권 시기 방송 통폐합의 유산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쪽은 임명권이 있으니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방송사 내부도 정치권의 힘을 빌려 조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구조가 됐다.

 민주당에선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시민단체나 직능단체에 주자고 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친민주당 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이 영구화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덩치 큰 공영방송을 어디가 통제할 것이냐를 논의하지 말고 아예 공영방송을 지금보다 축소해야 한다. 재난방송 등 핵심 기능만 예산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민영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선 방송이 민영화가 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민영방송인 SBS가 KBS·MBC보다 편파 논란이 덜 하다고 본다. 비대하고 논란 많은 공영방송이 지금처럼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