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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권의 미래를 묻다

아인슈타인이 혐오한 양자역학, 이젠 미래 걸린 기술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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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무엇을 창조한 사람이 자신의 창조물을 혐오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인슈타인이 바로 그런 예다. 그가 혐오했던 자신의 창조물은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은 빛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 즉 광자(光子 photon)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광자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처음 발견했다. 이는 드브로이의 파동-입자 이중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양자역학이 탄생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동시에 중첩돼 존재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측정에 따라 결정되는 확률로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은 세상 모든 일이 확률이 아니라 정확한 인과율에 의해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믿음을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말로 표현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빛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
이론 발견 해놓곤 스스로 부정
‘양자얽힘’ 증명 학자는 노벨상
각국 컴퓨터·통신 등 응용 경쟁

아인슈타인, 양자역학을 공격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뉴욕 포킵시에 있는 IBM에서 시스템원 양자컴퓨터를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뉴욕 포킵시에 있는 IBM에서 시스템원 양자컴퓨터를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1935년 5월 4일 뉴욕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린다. “아인슈타인, 양자역학을 공격하다.” 양자역학을 혐오했던 아인슈타인이 동료 2명과 함께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역설을 제시한 것이다. 이른바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줄여서 ‘EPR 역설’이라고 불리는 이 역설은 우화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전자쌍 발생기’라는 장치가 있다. 이 장치 속에서 모종의 폭발이 일어나는데, 이후 양옆에 뚫린 구멍으로 전자가 각각 하나씩 발사된다. 전자는 마치 지구가 자전하듯 회전한다. 전문적으로 이것을 스핀이라고 부른다. 특히, 전자를 위에서 내려볼 때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스핀 업’,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스핀 다운’이라고 부른다. 전자쌍 발생기에서 발사되는 두 전자의 스핀은 언제나 서로 정반대다. 다시 말해서, 하나가 스핀 업이면 다른 하나는 스핀 다운이다. 다만, 어떤 것이 스핀 업 혹은 다운인지는 알 수 없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두 전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상태, 즉 왼쪽과 오른쪽 전자가 각각 스핀 업과 다운인 상태와 그 정반대의 상태는 서로 동시에 중첩돼 존재한다. 전문적으로 이런 현상을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고 부른다.

이제 발사된 두 전자가 계속 날아서 하나는 지구, 다른 하나는 달에 도착한다고 하자. 만약 지구의 관찰자 앨리스가 자신에게 도착한 전자의 스핀을 측정했더니 스핀 업이라면 달의 관찰자 밥은 측정하기도 전에 자신의 전자가 스핀 다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앨리스의 전자가 스핀 다운이라면 밥의 전자는 스핀 업이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이상하지 않다.  전자쌍 발생기에서 폭발이 일어날 때 이미 왼쪽과 오른쪽으로 발사되는 전자의 스핀이 결정됐고 앨리스와 밥은 그냥 그것을 나중에 측정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이상한 일은 지금부터다. 앞서 전자의 스핀을 업과 다운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전자의 스핀 방향은 위·아래뿐만 아니라 앞·뒤로도 구분할 수 있다. 우화적으로, 위아래로 구분되는 스핀을 빨간색과 파란색 공으로 비유하고, 앞뒤로 구분되는 스핀을 매끈하고 꺼끌꺼끌한 공으로 비유해 보자.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쌍 발생기에서 발사되는 두 전자의 상태는 빨간색과 파란색 공의 중첩 상태이기도 하고, 매끈하고 꺼끌꺼끌한 공의 중첩 상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앨리스의 공이 빨간색이면 밥의 공은 파란색이어야 하고, 앨리스의 공이 매끈하면 밥의 공은 꺼끌꺼끌해야 한다. 좋다. 다만, 앨리스의 공이 빨간색이면 밥의 공은 파란색이지만 매끈하거나 꺼끌꺼끌할 수는 없다. 반대로, 앨리스의 공이 매끈하면 밥의 공은 꺼끌꺼끌하지만 빨간색이거나 파란색일 수는 없다. 그런데 앨리스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공의 색깔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고, 공의 거친 정도를 손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잘 생각해 보면, 밥의 측정 결과(현실)는 결국 지구와 달 사이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앨리스의 의지(생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은 광자를 이용해 양자얽힘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공로로 존 클라우저, 알랭 아스페, 그리고 안톤 자이링거에게 수여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진 것이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얽힘의 비합리성을 이용해 양자역학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양자얽힘은 오히려 더욱더 굳건해져 이후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이라는 분야를 잉태하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은 각각 온라인 암호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창이며, 해킹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방패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현재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자신들의 명운을 걸고 양자정보기술에 집중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나 국가안전보장국(NSA)과 같은 국가 기관, 그리고 구글·IBM·인텔·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민간 업체에서 양자정보기술에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다. 양자정보기술을 활용하는 스타트업은 그 숫자를 셀 수조차 없다.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 사이 2000㎞ 구간에 양자통신망을 구축했으며 이를 이미 금융 거래에 이용하고 있다. 이렇듯 미·중 패권 경쟁에서 양자정보기술은 가장 핵심적인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혐오했던 양자역학이 펼치는 이러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