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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는 척, 핵심기술 중국 빼돌렸다…수억 챙긴 삼성 직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21년 3월의 어느 새벽, 삼성디스플레이에 근무하던 50대 남성 A씨가 회사 내부망에 접속했다. 직원들 대부분이 퇴근한 시간대였지만, A씨의 심야 업무는 약 2주 동안 계속됐다. A씨는 연구원이면서 동시에 회사의 중국 생산법인이 소유한 설비를 중국의 디스플레이 회사인 B사에 매각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었다.

당시엔 단순히 업무가 많아 야근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A씨는 회사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제조자동화 기술’을 빼돌리는 중이었다. 그는 휴대전화로 수백장의 내부 자료를 몰래 촬영했고, 이를 이용해 B사의 자회사로 이직했다. 비밀 자료를 빼돌린 대가로 3억원이 넘는 연봉과 3억 5000만원 이상의 생활 지원금을 보장받았고, 거액의 자녀 교육비와 주택 임차료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추석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건 경찰의 수갑이었다. 경찰은 지난 3월 A씨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최근 4개월 동안 이와 같은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적발하기 위해 ‘경제 안보 위해범죄 특별단속’을 진행했다. 11일 발표된 중간 수사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간 총 35건의 사례가 적발됐고 77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진행된 특별단속에서 적발된 건수는 23건으로, 한 해 만에 52%(12건)가 늘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간 경제안보 위해범죄 특별단속을 실시해 77명을 검거했다. 뉴스1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간 경제안보 위해범죄 특별단속을 실시해 77명을 검거했다. 뉴스1

해외유출 사건 배로 증가… 중소기업에 피해 집중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2022년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유출 피해 추산액은 약 25조원으로 달한다. 이번에 공개된 적발 사례 중에서도 8건이 국외로의 기술 유출 사건이었다. 지난해에는 4건이었지만, 올해 배로 증가한 것이다. 해외 기술유출 수사 사례 중 절반 정도는 중국 기업과 관련된 것이었다.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한 대형병원 연구소에서 일하며 ‘심혈관 중재 시술’에 쓰이는 의료용 로봇 설계도면 등 관련 자료 1만여 건을 유출한 40대 중국인 C씨의 경우, 빼돌린 기술로 중국의 과학 기술 인재 유치 사업인 ‘천인 계획’에 지원했고 심지어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심혈관 중재 시술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거나 좁아졌을 때 스텐트(얇은 금속 튜브)를 넣어 혈관을 복구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해당 시술에 활용할 수 있는 로봇 제조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에 해당하는지를 심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해 중국으로 돌아갔던 C씨가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지난 3월 귀국한 사실을 파악하고, 출국 금지 및 주거지 압수수색 등을 통해 수사를 벌인 뒤 지난 7일 검찰에 송치했다. 만약 C씨가 유출한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로 결론 날 경우, 부정경쟁방지법이 아닌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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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찰에 붙잡힌 기술 유출 사범들은 주로 기술 보안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을 노린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사건의 83%인 29건이 중소기업 피해 사례였다. 또한 전체의 86%(30건)는 임직원 등 내부인에 의한 기술 유출 사건이었다.

경찰 “10월까지 특별단속… 적극 신고 필요” 

경찰청은 이처럼 국가 핵심기술을 포함한 산업 기술 유출 범죄가 늘어남에 따라, 올해 10월까지 국수본 직속 안보수사대 및 18개 시도청 소속 산업기술보호수사팀, 일선 경찰서 안보수사팀 인력 등을 전원 특별단속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경찰청 안보수사국 관계자는 “특별단속을 통해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를 엄단할 것”이라며 “의심 정황을 발견하면 최대한 빨리 신고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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