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칼럼

'실버 이기주의'는 정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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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개는 20대 중반께의 어느 날 느닷없이 날아드는 달갑지 않은 호칭이다. 거리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아저씨(또는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니, 내가 아저씨라니…. 처음에는 저항하고 부인하다 결혼하고 서른을 넘기면서부터는 차차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중년(中年)'은 어떨까. 40대 후반인 나는 자신을 '아저씨'이자 '중년'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국어사전을 보면 중년은 '청년과 노년 사이의 나이. 곧 마흔 살 안팎의 한창 일할 때'(국어대사전, 민중서림, 이희승 편)라고 돼 있다.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국어대사전(금성출판사)도 마찬가지다. 40세 앞뒤로 10년을 잡아 35~45세를 중년이라고 정의한다면 오십을 코앞에 둔 나는 졸지에 '노년'에 편입되는 셈이다.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연구원)만이 유일하게 '마흔 살 안팎의 나이'라는 정의에다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추가했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50대가 얼마나 될까. 사전 편찬자들이 늘어난 수명을 감안하지 않은 때문이다.

한발 앞서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일본도 고지엔(廣辭苑).이와나미(岩波) 국어사전은 중년을 '40세 전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메이카이(新明解) 국어사전은 '50대 중반에서 60대 전반에 걸친 연령'으로 현실화했다. 이 정의가 한국의 요즘 나이 감각에도 맞는 풀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전들은 중년(middle age)을 보통 45~60세, 40~60세로 잡고 있다.

가끔 내가 아저씨 아닌 "할아버지"로 불리는 상상을 한다. 마냥 상상에 그치진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닥쳐 올 일이니까. "아저씨"보다 더 큰 심리적 거부감이 생길 것이다. 그런 거부감 없이 자신을 '노인'이라고 인정하려면 적어도 65세는 돼야 하지 않을까.

현재 만 65세면 1941년생이다. 한국 사회에서 41년 이전 출생자는 어떤 세대인가. 일제하에서 태어나 해방, 좌우 이념 대립과 참혹한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다. 죽자 살자 일해 온 나라가 지금만큼 먹고살게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다. 이기주의보다는 가정.회사.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게 미덕이라고 배운 그들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도 자식에게 효도 받기는 힘들어진 첫 세대다. 특히 노인층에 갓 편입된 40년 전후 출생자들은 직장 생활 말년에 외환위기를 맞아 '아얏' 소리조차 못하고 떠밀려 나간, 막판까지 등골이 빠진 세대다.

출판가에서 젊은 여성이나 직장인에게 '이기주의'를 권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실버 세대'야말로 지금부터 이기주의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는 굳이 이기주의를 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똑똑하고 영악하다.

먼저 자신을 잘 지키는 이기주의가 필요하다. 종합상사에서 일하다 57세에 대학교수로 변신한 일본의 가와무라 미키오(河村幹夫.71)는 저서 '50세부터의 정년 준비'에서 세 가지 기술을 익히라고 권했다. 몸을 지키는 기술(護身術), 뇌를 지키는 기술(護腦術), 그리고 돈을 지키는 기술(護金術)이다. 호신술은 노쇠한 몸이라도 최소한 위험을 예방하거나 잘 피하는 요령을 익혀 두라는 뜻이고, 호뇌술은 치매를 막거나 늦추는 방법, 호금술은 돈을 잘 간수하고 유용하게 쓰는 기술이다.

두 번째는 같은 노인층의 이익을 위한 조직적 행동이다. 집단이기주의라 해도 좋다. 조직화돼 있지 않으니까 정치인으로부터 "투표 날엔 집에서 쉬시고…" 따위의 말을 듣는다. 노인 인구는 앞으로도 급속히 늘어나, 2026년엔 한국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이 된다. 독자적 정치세력화도 시도할 만하다. 94년 네덜란드 총선거에선 고령자 정당이 두 개나 등장해 7명의 당선자(의석률 4.7%)를 냈었다. 미국 고령자 단체의 활발한 대정부.의회 로비 활동은 '그레이 로비'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지금의 실버세대는 한평생 주로 희생만 해 온 세대다. 그래서 그들의 '실버 이기주의'는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럴 권리도, 자격도 있다.

노재현 문화·스포츠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