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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 본고장답지 않다? 규모 작지만 밀도 있는 교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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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20면

‘프리즈 뉴욕  2023’ 아트페어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사진을 격자무늬로 조합한 8개의 대형 액자를 설치한 가고시안 갤러리. [사진 프리즈 뉴욕]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사진을 격자무늬로 조합한 8개의 대형 액자를 설치한 가고시안 갤러리. [사진 프리즈 뉴욕]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미국 뉴욕 허드슨 야드에 위치한 복합문화센터 더 셰드(The Shed)에서 ‘프리즈 뉴욕 2023’이 열렸다. 올해는 27개국 67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셰드의 2·4·6층 세 공간으로 나뉘어  부스를 차렸다. 8층에는 루이나·일리커피·LG올레드 등 파트너 브랜드들이 아트와 접목한 독특한 볼거리와 라운지를 마련해 관람객을 맞았다. 특히 명품 시계 브랜드 브레게의 부스는 한국인 큐레이터 심소미씨가 ‘궤도의 시간’이라는 주제로 공간을 장식해 눈길을 끌었다.

프리즈 런던이나 LA, 서울에 비하면 뉴욕 아트페어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현대 미술의 본고장인 뉴욕답지 않다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작품에 집중하기에 훨씬 좋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욕의 유명한 아트 어드바이저인 엘리자베스 피오레는 “규모가 작아서 갤러리마다 여러 작가의 작품을 걸기보다 한 작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솔루 부스를 많이 차린다”며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집중할 수 있고 큐레이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장점이 더 많다”고 말했다.

한 작가 작품에 집중

‘프리즈 뉴욕 2023’ 최고의 부스로 꼽힌 하우저 & 워스 갤러리. 잭 위튼의 작품들로만 전시장을 채웠다. [사진 프리즈 뉴욕]

‘프리즈 뉴욕 2023’ 최고의 부스로 꼽힌 하우저 & 워스 갤러리. 잭 위튼의 작품들로만 전시장을 채웠다. [사진 프리즈 뉴욕]

실제로 이번 아트페어에서도 메이저 갤러리들은 한 작가의 작품만을 집중 조명한 솔로 부스들을 선보였다. 하우저 & 워스는 미국 작가 잭 위튼의 1960년대부터 2010년 말까지 작품들을 선보였다. 가고시안 갤러리 역시 사진작가 낸 골든이 15년 동안 작업한 작품들로 부스 전체를 채웠다.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는 로렌 할시의 석고기반 판화와 디지털 콜라주로만 부스를 채웠고, 페이스 갤러리 또한 로버트 나바의 작품을 주요 작품으로 걸었다. 한국에서 참가한 갤러리 현대도 유근택 작가의 작품으로만 부스를 차렸다.

이들 솔로 부스들은 판매 현황이 좋았다. 하우저 & 워스 갤러리의 잭 위튼 솔로 부스는 이번 아트페어 최고의 부스로 화제가 됐고, 페어 첫날 95000달러(약 1억2600만원)~250만 달러(약 33억2500만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그림을 완판했다. 고인이 된 잭 위튼은 생전에 “나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백인의 의미를 매우 잘 알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고 말한 바 있으며, 경력 전반에 걸쳐 흑백 그리고 회색 음영이 포함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는데, 이번에 소개된 작품들은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들로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었다.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의 로렌 할시 역시 이번 아트페어에서 화제의 부스로 인기를 모았고, 가격은 밝히지 않았지만 첫날 모두 완판되는 기록을 세웠다.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가 소개한 수잔 프레콘의 그림과 종이 작업물 역시 5만 달러(약 6600만원)~50만 달러(약 6억6600만원) 사이에서 완판됐고, 페이스 갤러리의 로버트 나바의 작품 역시 3만 달러(약 4000만원)~8만 달러(약 1억6000만원)의 가격에 완판됐다.

이 외에도 타테우스 로팍 갤러리가 선보인 로버트 롱고의 작품이 90만 달러(약 12억원)에, 다니엘 리히터의 그림 두 점이 37만5000달러(약 5억원)에 판매됐다. 케이시 카플란 갤러리가 소개한 매튜 로나이의 조각품은 30만 달러(약 4억원)에, 화이트 큐브 갤러리가 전시한 한국 작가 박서보의 도자기는 16만 달러(약 2억1200만원)에 판매됐다. 타테우스 로팍 관계자는 “우리 판매의 대부분은 미국과 아시아에서 온 새로운 수집가들로부터 이루어졌고, 이는 우리가 바랐던 대로”라고 말했다.

사진을 재조명하다

현재 뉴욕 아트 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는 로렌 할시의 작품들을 전시한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 [사진 프리즈 뉴욕]

현재 뉴욕 아트 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는 로렌 할시의 작품들을 전시한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 [사진 프리즈 뉴욕]

미술 시장에서 사진은 회화나 조각 작품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이번 프리즈 뉴욕에선 사진 장르를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보였다. 올해 최고의 부스 중 하나인 가고시안 갤러리는 미국 사진작가 낸 골딘의 수천 장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이미지들을 골라 스토리보드처럼 조합한 8개의 대형 그리드(격자무늬로 조합한) 액자를 선보였다.

특히 가고시안은 첼시에 있는 갤러리에서도 미국의 유명 패션·초상 사진작가 리차드 아베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 ‘Avedon 100’을 진행중이다. 전시장 입구의 마릴린 먼로 사진부터 오드리 헵번, 나스타샤 킨스키 등 전설적인 할리우드 배우들은 물론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 등의 스타를 비롯해 패션지 보그·바자와 작업했던 화보 속에서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쉬퍼 등 슈퍼모델들의 전성기 시절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리차드 아베든의 사진전은 현재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도 ‘벽화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리 러브레이스 오닐의 단독 부스를 마련한 젠킨스 존슨 갤러리. [사진 프리즈 뉴욕]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리 러브레이스 오닐의 단독 부스를 마련한 젠킨스 존슨 갤러리. [사진 프리즈 뉴욕]

가고시안 외에도 포테스 달로이아 & 가브리엘 등을 비롯한 갤러리들에서 크고 작은 사진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국의 국제 갤러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솔로 부스를 기획해 다채로운 색감의 유리벽돌을 활용한 신작들을 선보였는데, 작은 방 안에 따로 설치한 몇 개의 다른 아티스트 작품 중 사진처럼 보이는 이기봉 작가의 그림에 관람객의 발길이 잦았던 것도 동일한 맥락인 듯 보인다. 이기봉 작가는 캔버스에 풍경을 그린 뒤 일정한 간격을 두고 플렉시글라스(얇은 아크릴 판)나 얇은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겹쳐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린다. 두 이미지가 겹치면서 안개가 낀 듯한 몽환적인 풍경이 만들어지는데, 관객 대부분은 첫 인상을 사진이라고 느낀다.

한편,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심사위원이자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혜영씨는 이번 ‘프리즈 뉴욕’ 감상 소감을 “셰드에서 나와 조금 떨어진 첼시에 가면 페이스, 하우저 & 워스, 가고시안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갤러리들의 전시장이 모두 밀집해 있어 사실상 프리즈 뉴욕은 셰드에서 첼시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관람객과 컬렉터들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페어의 규모는 줄였지만, 그만큼 높아진 밀도와 친밀함 덕분에 이들의 발길이 자연스레 페어 장 밖 갤러리에까지 이어지게 한 것은 아트 저변 확대를 꿈꾸는 프리즈 뉴욕의 영리한 전략인 듯 보인다.

LG 올레드와 NFT 작품 협업한 식스앤파이브 “구름·하늘 가위로 오린 기분”

시적이고 몽상적인 3D 영상을 만드는 디지털 아티스트 이즈퀴엘 피니. [사진 LG 올레드]

시적이고 몽상적인 3D 영상을 만드는 디지털 아티스트 이즈퀴엘 피니. [사진 LG 올레드]

‘프리즈 뉴욕 2023’ 기간에 셰드 8층에선 LG 올레드가 디지털 아티스트 식스앤파이브(Six N. Five)와 협업한 NFT 예술 작품을 선보였다.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식스앤파이브는 아티스트 이즈퀴엘 피니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 스튜디오로 ‘자연과 공간’을 모티브로 몽환적이고 시적인 3D 디지털 아트를 선보이는 팀이다. 애플·나이키·까르띠에 등의 글로벌 광고홍보 영상을 제작하며 유명해졌고, 2023년작 ‘플로우(Flow)’는 지난 4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165만1000 홍콩달러(약 2억8000만원)에 판매됐다. 아르헨티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태권도장을 한 아버지 덕분에 25년간 태권도를 수련했고, 등에는 ‘태권도’라는 한글 문신도 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다.

이번 LG 올레드와의 협업에서 선보인 작품은 ‘하늘 사이(AMONG THE SKY)’. 97형 올레드 에보(evo)를 비롯한 오브제컬렉션, 이젤, 포제 등 라이프스타일 올레드 TV를 캔버스처럼 활용해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 그리고 깔끔하고 세련된 실내 공간을 담은 영상이다.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데 푸른 하늘은 내게 매우 좋은 캔버스다. 이번 협업에서는 특히 네모난 TV 디스플레이(화면)에 영상을 구현하면서 구름이나 하늘을 가위로 네모나게 오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재밌었다. 디지털 아티스트에게는 디스플레이가 매우 중요한데 LG 올레드 TV는 섬세한 화질과 압도적인 명암비를 갖고 있어서 내가 원하는 모든 색감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뻤다”고 그는 말했다.

초현실적이고 몽상적인 이미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무·하늘 등의 자연을 이용해 현실과 그렇지 않은 사이, 디지털과 물리적인 것의 사이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며 “요즘 젊은 세대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은데 내 작품을 통해 각자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느긋하게 마음을 다스렸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식스앤파이브(Six N. Five)라는 이름은 “6시 5분은 퇴근 후 집에서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창조·명상의 시간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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