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이는「북한 역사학」|권희영·박성수 교수 잇따라 논문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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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의 한국사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역사학계의 연구활동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분단이후 남한의 역사연구는 객관적 사실 발굴에 치중하는 실증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이었던 반면 북한의 연구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에 입각한 발전 론 적 해석에 중점을 두어 왔다. 그 결과 같은 조상의 같은 역사를 연구하면서도 남북의 연구결과는 점점 멀어져
왔다.
80년대 중반이후 북한의 역사연구 결과들이 대학생과 일반인들에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이 같은 남북 역사학간 괴리의 극복이 역사학계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했다. 최근 북한의 역사연구 성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학계의 적극적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은 지난 23일「북한의 한국학 연구 성과분석」을 주제로 인문과학 학술 토론회를 개최, 북한의 역사 연구를 시대별로 검토한데 이어 29, 30일 이틀간「통일 한국의 미래상과 삶의 양식」이란 주제의 사회과학 학술 토론회를 개최해 예술문학 분야에서 남북 역사학의 통합 문제를 다룬다. 계간역사 학술지『역사비평』도 최근호에서「남북역사학의 쟁점」이란 기획특집으로 남북 역사연구 결과를 비교 검토했다.
정신문화 연구원 인문과학 학술토론회에서는 역사분야에 7편의 논문이 발표됐는데 북한의 근대사연구에 대한 권희영 교수(정신문화 연구원)의 논문이 특히 신랄한 비판으로 눈길을 끌었다.
권 교수는「북한에서의 한국 근대사인식의 문제」란 논문에서『북한의 역사학은 근대적 마르크스 역사 용어와 김일성 우상화라는 전근대적 봉건사상과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북한역사학의 시대 구분 론과 각 계급에 대한 평가를 연구,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 구성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할 경우 한국 근대사는 개항으로 서구문물이 본격 유입된 1876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로 본다. 그러나 북한은 계급투쟁을 기준으로 삼아 근대사를 반 외세·반 침략 투쟁이 시작된 1860년대부터 19l9년 3·1운동까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구분에 따라 북한 역사학계는 근대사 기간 중 김옥균 등 민족 부르좌 지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나 3·1운동이 후부터의 현대사에서는 부르좌 지를 비판하고 김일성 가계중심의「인민대중」을 강조한다. 3·l운동의 민족대표들을『투항주의 적이며 배신적』이라고 비판하며『3·l운동 이후 노동계급을 선두로 한 민족 해방운동이 시작되며 그 지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 김일성 가문』이라고 주장한다.
권 교수는 이 같은 북한의 근·현대사 연구에 대해 『합법칙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김일성 가계와 접목시키려 하기 때문에 마르크스 적 관점이기보다 기계주의 적 관념론』이라고 평가했다.
사회과학 학술토론회에서「남-북 역사학의 통합문제」를 발표한 박성수 교수(정신문화 연구원)도 시대구분 문제를 중심으로 북한 역사학을 비판한다.
박 교수는 북한이 근대사의 시작을 개항(1876년)에서 1864년 대원군의 집정으로 바꾼 이유중의 하나도 김일성 우상화로 설명했다. 즉 북한역사학계는 인민의 반 외세 투쟁을 강조하면서 1866년 일어난 미국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인민을 지도한 영웅」이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 라고 강조하고 있다.
박 교수는 또 북한의『조선통사』에서『평양에서 3·1운동이 시작되었다』고 강조하는 것도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3·1운동의 기수로 꾸미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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