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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돌확, 5월의 오아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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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집 앞에 세워둔 차의 앞창문이 온통 뿌옇다. 손으로 쓸어보면 노란 송화다. 4월 말에서 5월 초, 소나무는 꽃가루를 바람에 날린다. 한 꽃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 자웅동체 식물은 그 출현 시기가 아주 늦다. 그 전에는 식물들이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수나무가 따로 있었고, 시간이 흘러 소나무처럼 한 나무에서 암꽃·수꽃을 따로 피우는 식물도 등장했다. 송화를 날리는 주범은 바로 소나무의 ‘수꽃’이다. 다른 나무의 암꽃에 닿으려, 바람결에 이렇게 많은 꽃가루를 날리는 것이다.

내가 사는 속초, 우리 마을에선 이 송홧가루 날릴 때 논에 물을 댄다. 모는 이미 비닐하우스에서 싹을 틔웠고, 바짝 마른 논에 물을 댄 뒤 모를 심는다. 속초에 이사 온 처음엔 뭐가 뭔지 모르고 계절이 흘러갔다. 이제 10년 차에 이르니 송홧가루 날리면, 논이 물이 채워지는구나, 이제 모를 심겠구나 등이 그려진다.

행복한 가드닝

행복한 가드닝

이때쯤 나의 정원에도 생기가 돈다. 나는 작업실 앞 작은 돌확에 맑은 물을 넣어준다. 이 돌확에 물을 채우면 물두꺼비가 귀신같이 찾아온다. 물속에 금붕어를 넣어줄 때도 있고, 파피루스·물상추·개구리밥·부레옥잠을 넣어주기도 한다. 이 크지도 않은 돌확은 우리 집 정원의 오아시스다. 물을 마시러 오는 길고양이 서너 마리, 무리 지어 오는 참새들, 쌍쌍이 오는 직박구리와 동박새, 딱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왕래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작은 돌확의 물도 그 관리는 쉽지 않다. 날이 더워지면 물은 바로 오염이 된다. 이럴 땐 갈대·부레옥잠이 물을 정화해 그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물이 순식간에 초록 플랑크톤으로 덮이는 일도 일어난다. 이걸 막기 위해 검은색 식용 염료를 풀어주어 햇볕을 차단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더불어 모기의 부화장이 되기에 십상인데, 이럴 때 모기 애벌레를 먹어주는 금붕어도 큰 역할을 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