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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주택 낙찰가율 60%…보증금 전액 회수 어려운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가운데 18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하던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전세사기 경고문구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가운데 18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하던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전세사기 경고문구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주택의 경매 낙찰가율(감정평가액 대비 경매 낙찰 금액)이 평균 61%로 나타났다. 정부가 피해 세입자에게 경매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낙찰가율이 80% 이상으로 높거나 30%이하로 낮아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4일 중앙일보가 피해자 및 법원경매정보 등을 통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경매를 통해 낙찰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사례는 106건으로 조사됐다. 대부분 2~3회 유찰 된 뒤 낙찰됐기 때문에 낙찰가율은 평균 61%를 기록했다. 예를들어 감정평가사가 평가한 주택의 가치가 1억원인데 6100만원에 낙찰(매각)됐다는 얘기다.

건축왕 남모씨가 주도한 미추홀구 전세사기의 경우 대부분 남모씨가 금융기관에서 선순위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뒤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으며, 피해 세입자 대부분이 후순위권자다. 낙찰가율이 주택 평가 가치의 절반 수준이라 후순위인 세입자 대부분이 전세보증금을 떼일 처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부와 여당은 지난 23일 특별법을 제정해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에게 경매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매입이 아닌 거주만 원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매를 통해 사들여 공공임대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시뮬레이션 결과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시세 수준으로 낙찰받아 전세보증금 전부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낙찰가율이 30% 이하여야 한다. 낙찰가율이 이보다 높을수록 우선매수권을 활용하는 세입자의 피해는 늘어나는 구조다.

반대로 세입자가 우선매수권 활용을 포기하고 LH가 경매 낙찰을 받을 경우에는 낙찰가율이 최소 80%는 나와야 세입자가 보증금 대부분을 회수할 수 있다. 실례로 지난 1월 낙찰된 A아파트는 지난해 감정평가액이 2억2800만원이었는데, 해당 아파트의 근저당 설정 금액은 1억4400만원,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은 7000만원이었다.

대출해준 상호금융사의 근저당 채권최고액 금액이 일반적으로 대출원금의 130%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 대출원금은 약 1억1000만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출원금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은 1억8000만원으로 감정가의 약 79.2%를 차지한다. LH 등이 낙찰받을 경우 최소 이 수준의 낙찰가율을 확보해야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변제받는 데 유리해진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미추홀구 경매 사례의 경우 남모씨 일당이 대출금을 다른 아파트 신축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며 “실제 선순위 청구 금액을 보면 원금 상환이 거의 안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대출금 지연 이자 등이 쌓여 선순위 금융사가 채권최고액만큼 확보할 경우 이 사례에선 낙찰가율이 최소 94%가 나와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지킬 수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인천 부평구 인천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대책회의에서 발언 하고 있다. (공동취재) 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인천 부평구 인천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대책회의에서 발언 하고 있다. (공동취재) 뉴스1

하시만 해당 아파트의 실제 낙찰가율은 61.1%(1억3900만원)로 선순위 대출원금을 제하면 피해 세입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최대 3000만원이 채 안된다. 여기에 이 지역에는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닌 가구도 많다.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소액 임차인은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최우선변제를 통해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2∼3년 주기로 바뀌는 최우선변제 기준이 근저당 설정 시기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인천시는 최우선변제를 못 받는 미추홀구 피해 세입자가 약 70%에 이른다고 밝혔다.

결국 피해 세입자가 적정 가격에 경매 낙찰을 받아 실질적으로 전세보증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시세에서 보증금을 뺀 금액 이하에 낙찰받아야 한다. 주택 시세를 미추홀구 전세사기 경매 건의 평균 낙찰가율(61.0%)로 보면, 해당 피해자는 감정평가액의 25% 수준에서 먼저 낙찰받아야 손해가 없다. 대신 이처럼 낙찰가율이 낮아질 경우 선순위인 금융사나 공공기관 등의 손해가 커진다.

전문가들은 다수의 참여자가 경쟁하는 경매에서 원하는 가격에 낙찰을 받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유찰 횟수나 낙찰가율 등 우선 매수 기준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경매업계 관계자는 “정부 설명이라면 실제 매수 의사가 없는 사람이 경매 물건을 높은 가격에 낙찰받았을 때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을 포기하는 대신 LH에 계속 거주 의사를 밝히면 LH는 해당 주택을 높은 가격에 무조건 매수해야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3일 발표한 정부 대책에는 기준에 관한 내용이 없다. 서진형 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는 손해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편법적인 경매 행태와 피해자 간 형평성 논란 등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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