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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인 줄" 조회수 100만 …학폭 없는 교실, 이 선생님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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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성인 남성이 학생들과 함께 가수 지코의 ‘쌔삥’에 맞춰 춤을 춘다. 이 남성은 학급의 담임이자 유튜버인 이현길(41) 교사다. 이 교사가 운영하는 ‘현길쌤의 두둠칫’ 채널에 올라온 영상 조회수는 41만회가 넘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HOT부터 뉴진스까지 다양한 가요의 안무를 따라하는 영상을 올린다. 1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화제다.

이현길 교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음악에 맞춰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사진 '현길쌤의 두둠칫' 영상 캡쳐

이현길 교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음악에 맞춰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사진 '현길쌤의 두둠칫' 영상 캡쳐

프로 댄서처럼 능숙한 솜씨지만 이 교사는 전문적으로 춤을 춰본 적 없는 17년차 초등 교사다. 영상 속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에 댓글과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만날 수 있는 선생님”이라는 반응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 연일 학교폭력·교권침해 사건이 보도되지만, 그는 “춤추는 우리 교실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다”고 했다. 지난 4일 수업을 마친 이 교사를 파주 파평초 6학년 1반 교실에서 만났다.

“오디션도 참가” 춤 좋아하던 학생에서 춤 잘 추는 교사로

이현길 교사가 4일 경기 파주 파평초등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현길 교사가 4일 경기 파주 파평초등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당초 이 교사는 코로나19로 학생들의 체육 활동이 제한되자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운동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제자들에게 의미 있는 졸업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함께 췄던 춤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조회수가 39만회를 넘고, 댓글도 1500여개가 달렸다. ‘감동적이다’,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응원해줘서, 이후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함께 춤 춘 영상들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교사가 올린 영상엔 ‘댄서인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었다’는 댓글도 많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이 교사는 대학 때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20대 후반엔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할 정도로 ‘춤에 진심’이었다. 그는 “초등학생 때 서태지와 아이들 따라하던 춤 좋아하던 아이였다”며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춤 추는 게 내 천직인 것 같다”고 했다.

“마음 상해도 춤 추다 보면 해소…댓글도 같이 보며 교육”

 이현길 교사가 4일 경기 파주 파평초등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최근 연구 중인 안무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현길 교사가 4일 경기 파주 파평초등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최근 연구 중인 안무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김종호 기자

그는 춤이 체력은 물론 좋은 인성도 길러준다고 강조했다. 아이들끼리 합을 맞추며 춤을 추다보면 사소한 다툼은 언제 그랬냐는 듯 풀릴 때가 많다. 이 교사는 “잘하고 못하는 친구가 있을 수 있지만, 서로 배려하며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며 “인내심과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고, 학교폭력 예방 효과도 있다”고 했다.

이 교사의 유튜브 채널이 화제가 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다 보니 응원 댓글 사이에 간혹 ‘악플’도 있다. 악플은 오히려 수업 소재가 된다. 그는 “영상에 대한 댓글도 아이들과 함께 읽는데, 악플을 통해 통신 윤리 교육을 할 수 있다”며 “교과내용에도 있지만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악플이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온라인 상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 스스로 체감할 수 있다”고 했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교실도 행복”

이현길 교사가 4일 경기 파주 파평초등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현길 교사가 4일 경기 파주 파평초등학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퇴근 후에는 아이돌 신곡을 찾아 안무 동작을 연구한다. 그는 “만약 누군가 시킨 일이었다면 절대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사는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과 교실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에게도 ‘나중에 커서 선생님처럼 일 하면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며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준다”고 했다.

모든 교사가 이 교사처럼 춤을 추고 영상을 올리며 활발하게 학생들과 소통하기란 어렵다. 이 교사도 “지금 재직 중인 학교가 소규모 학교라 학생·학부모·동료교사의 동의를 얻기 쉬웠다”며 “이런 활동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춤이나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교사가 좋아하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학생들과 접점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사는 “여러 분야에 재능있는 교사들이 정말 많은데, 학생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교육환경이 필요하다”며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도록 교사에게 좀 더 재량권을 준다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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