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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후위기로 산불 급증에도 산림헬기 67%가 노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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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일 서울 인왕산에서 발생한 산불. 서울에서 사상 처음 '산불 2단계'가 발령됐다. [연합뉴스]

2일 서울 인왕산에서 발생한 산불. 서울에서 사상 처음 '산불 2단계'가 발령됐다. [연합뉴스]

올 산불 380건, 최근 10년 동기 평균보다 53.5% 높아

산림헬기 60% 평균 25년 구형 러시아산, 부품 못 구해

그제 인왕산 산불로 서울에서 사상 처음 ‘산불 2단계’가 발령됐다. 발생 다섯 시간 만에 큰불은 잡았지만 축구장(7140㎡) 21개 면적인 임야 15㏊(헥타르)가 탔다. 2일 하루에만 전국 34곳에서 산불이 났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1일까지 석 달간 발생한 산불은 380건이다. 최근 10년(2013~2022) 동기 평균(247.5건)보다 53.5%나 높다.

산불은 기후위기가 심화시킨 대표적 재난이다. 정부의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산불은 742건 발생해 2만4787.5ha를 태웠다. 10년 평균(481건)을 크게 웃돈다. “2100년까지 전 세계 산불이 50% 증가할 것”이라는 유엔환경계획(UNEP)의 보고처럼 산불 증가는 세계적 현상이다.

특히 한반도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지면서 산불 위험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3월의 울진 산불은 213시간 동안 주택 319채를 포함해 산림 약 2만㏊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도심 화재와 달리 산불은 헬기가 대량의 물을 뿌려 진화하는데, 주력인 산림헬기가 노후화된 게 문제다. 산림청의 산림헬기 48대 중 32대(67%)가 연식이 20년 넘은 ‘경년(經年) 항공기’다. 30년 이상 헬기도 11대다.

심지어 29대는 평균 연식이 25년 된 러시아 기종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 언제 가동을 멈출지도 모른다. 고장이 생기면 멀쩡한 헬기 1대를 분해해 부품 교체 용도로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반면에 10년 미만 헬기는 다섯 대에 불과하다. 지자체가 임차해 쓰는 민간 헬기도 노후가 심각하다. 지난해 11월 강원도 양양에서 산불을 감시하다 추락해 5명이 사망한 사건의 민간 헬기는 연식이 47년이나 됐다. 헬기 숫자를 늘리고 교체 주기를 앞당기지 않으면 언제 또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산불 예방에도 신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위험 지역의 드론 순찰을 늘리고, 야간에는 열화상 카메라로 감시체계를 확충해야 한다. 산림 근처 논밭의 쓰레기 소각을 금지하거나 공동소각장을 만드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일(14분의 1), 일본(6분의 1) 등보다 낮은 임도(林道) 비율을 높여 산불 단절 효과를 키우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산림계획 시 수종도 잘 따져야 한다. 침엽수는 송진 등 기름 성분이 많아 불에 오래 타는데, 국내 산림의 40%는 침엽수림이고 혼합림은 30%가 안 된다. 반면에 활엽수는 불에 빨리 타 진화가 쉽고, 뿌리가 깊어 흙을 잡아 주는 효과도 있어 산사태 방지에 도움이 된다. 4~5월은 강원도에서 ‘양간지풍’이 불어 산불 위험이 가장 높다. 각별한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