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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짜증내고, 미국 화내고, 러시아는 분노하는" 이 나라 [지도를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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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혈관이 연결된 심장 모양을 한 이곳은 어디일까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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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를 드리자면, 

힌트

① 메이저 20회 우승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출생지
② 빵 등을 녹인 치즈에 찍어 먹는 음식 ‘퐁듀’가 유명
③ 만능 엔터테이너 ‘K팝 스타’를 ‘OOO 군용 칼’로 표현해 화제

OOO군에서 보급하는 멀티툴 맥가이버 칼 모습. 큰 칼, 일자 드라이버, 깡통따개, 송곳 등으로 쓰일 수 있다. 사진 트위터 캡처

OOO군에서 보급하는 멀티툴 맥가이버 칼 모습. 큰 칼, 일자 드라이버, 깡통따개, 송곳 등으로 쓰일 수 있다. 사진 트위터 캡처

주변 지도를 살펴볼까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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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유럽에 위치한 내륙국 스위스입니다. 한반도 면적의 5분의 1밖에 안 되지만,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우리 돈으로 1억원이 넘는 부자 나라죠. 그만큼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데요. 빅맥지수(맥도날드 햄버거 빅맥 가격)가 수년째 부동의 1위(약 9000원)입니다. 

그런데도 하얀 만년설과 푸른 초원이 펼쳐진 알프스와 쥐라 산맥을 보러오는 관광객이 연간 수천만명이라고 하네요. 한국인들도 가장 가고 싶은 유럽 여행지로 스위스를 많이 꼽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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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무기 지원 막아 뿔난 서방 

이토록 사랑받는 스위스가 최근엔 ‘샌드백’ 신세가 됐습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침공한 이후, 국제사회가 러시아 대(對) 서방으로 분열된 가운데, 양 진영 모두 ‘중립국’인 스위스를 탐탁지 않아 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개전 초반 유럽연합(EU)은 아니지만 EU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반환하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하면서 러시아로부터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질타를 받았는데요. 

최근에는 포탄·탱크(전차) 등이 부족한 우크라이나에 자국에서 생산한 무기 지원을 막으면서 서방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중립국의 탈을 쓰고 서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요. 사카 잘라 베른대 사학과 교수는 “EU는 짜증내고, 미국은 화내고, 러시아는 분노하고 있다”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지난 3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최전선인 바흐무트에 있는 기관총과 탄약 모습.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탄약과 포탄 등이 바닥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최전선인 바흐무트에 있는 기관총과 탄약 모습.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탄약과 포탄 등이 바닥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서방의 대러 제재에 함께 한 스위스가 왜 우크라이나에 자국산 무기는 지원하지 않는 걸까요. ‘전쟁물자법’ 때문입니다. 스위스는 자국산 군수품을 구매한 나라가 다른 국가로 이를 재수출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립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국가 간 무력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에는 재수출을 못 하도록 하고 있죠. 

이로 인해 스위스는 지난 1년 동안 독일·덴마크·스페인 등이 구입한 스위스산 포탄과 장갑차를 우크라이나로 공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계속 거절하고 있습니다. 서방 국가들도 처음에는 스위스의 입장을 이해했죠. 

그런데 소모전 양상으로 포탄 등 우크라이나 무기가 거의 바닥나면서 상황이 변합니다. 지난해 말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측 인사들이 대거 나서서 즉각적인 지원을 호소하는데, 스위스의 단호함에 창고에 쌓인 무기를 내주지 못하니 서방도 뿔이 날 수밖에요. 

경제 혜택만 누리는 중립국 비판 

스위스도 수차례 정책 변경을 논의했는데요. 지난 1월에는 스위스 연방의회에서 우크라이나에 자국산 무기를 지원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죠. 서방 국가도 우크라이나도 기대에 부풀었지만, 정작 지난 10일 스위스 연방장관 회의체인 연방평의회에서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일부 서방 관계자들은 스위스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수십년 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혜택을 입었는데 결국 돕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지난 2014년 5월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스위스 대형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 건물에서 스위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지난해 내부 고발자에 의해 크레디트스위스 비밀계좌 명단이 대거 드러났는데, 독재자, 살인자 등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지난 2014년 5월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스위스 대형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 건물에서 스위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지난해 내부 고발자에 의해 크레디트스위스 비밀계좌 명단이 대거 드러났는데, 독재자, 살인자 등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거기다 스위스가 자국내 러시아 자산 약 493억 달러(약 65조원) 가운데 단 80억 달러(약 11조원) 정도만 동결하는 등 제재도 느슨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특히 스위스 비밀 계좌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측근들 재산이 대거 숨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각에선 경제적 혜택만 누리는 중립국 지위는 버리라는 요구까지 나오는데요.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은 단호하게 “스위스산 무기는 전쟁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중립성이 중요하다. 중립을 포기하라는 특정 집단의 요구는 전쟁 광란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300년 만에 피로 얻은 중립국 지위  

스위스는 중립국 지위를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수 없습니다. 무려 300년 동안 엄청난 피를 흘려 얻어냈기 때문이죠. 유럽 정가운데 위치한 스위스는 지리적 요충지로 꼽힙니다. 주변에 강대국 독일·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에 둘러싸여 있는데요. 

스위스를 거치면 동서남북 어디로나 갈 수 있죠. 유럽의 ‘지름길’입니다. “스위스를 얻는 자가 유럽을 얻는다”는 말도 있었다고 해요. 스위스 지도가 유럽의 심장처럼 보일만 합니다. 그러니 영토 확장에 욕심 있는 주변 강대국은 스위스를 끊임없이 쳐들어오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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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스위스는 1500년대부터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중립 정책을 논의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죠. 1798년에 프랑스 대혁명 시대를 이끈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결사항전했으나 점령당합니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폴레옹 전쟁(1803~1815년)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서야 국제사회로부터 최초로 영세중립국으로 인정 받습니다. 영세중립국은 다른 국가 간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의무를 가진 나라를 말합니다. 대신 다른 국가들도 영세중립국을 침공하지 않죠. 당시 유럽은 새로운 질서와 균형을 모색하면서 스위스가 강국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줄 거라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스위스 육군 병사들이 지난해 4월 스위스 남서부 라베이모클에 있는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중무장한 요새 밖에서 소총으로 사격하고 있다. 스위스 병력은 약 14만명이다. EPA=연합뉴스

스위스 육군 병사들이 지난해 4월 스위스 남서부 라베이모클에 있는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중무장한 요새 밖에서 소총으로 사격하고 있다. 스위스 병력은 약 14만명이다. EPA=연합뉴스

오랜 세월, 지정학적 요충지인 스위스가 중립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강력한 군사력 덕분인데요. 평화는 협정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힘이 지켜준다고 여겼습니다. 1930년대는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이 군사력을 키우는 걸 파악하고 수년에 걸쳐 의무 군사 훈련을 시키고, 무기와 물자를 비축하는 등 철저한 준비로 2차 세계대전(1939~1945년)때 침략을 막습니다. 

현재도 스위스 남성은 19세부터 군에 소집된 뒤 18주간 기본 훈련을 받고요. 20~25세까지는 매년 3주간씩 훈련에 참여합니다. 전쟁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2~3일 안에 수십만명을 동원할 수 있다네요. 

휘청이는 무기 수출 강국 딜레마 

탄약·정밀화기 등 무기 제조기술도 뛰어나죠. 스위스 항공·보안·방위(ASD)협회에 따르면 군수업체가 1000여개가 있는데 대부분 미국·유럽 기업 소유입니다. 근로자 1만4000여명이 연간 25억7000만 달러(약 3조4000억원) 매출을 올리는데 대부분 수출합니다. 스위스는 지난해 세계 무기 수출국 14위입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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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쟁물자법 논란으로 최대 수출국 독일을 비롯해 유럽 국가들이 스위스산 무기 구매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당장 공급망이 막힐 위기에 처한 군수업체들은 스위스를 떠날 준비를 합니다. 스위스 군비 전문가인 마티아스 졸러는 “해외로 가지 않으면 모두 파산할 것”이라면서 “스위스 방산 산업의 종말이 시작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방산 산업은 스위스 GDP의 1% 정도로 아주 작은 수치죠. 그런데 방산 산업이 쇠퇴하면 반도체·무인항공기·미사일 등의 제조에 들어가는 첨단기술 발달도 더뎌져 결국에는 스위스 안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올리버 디겔만 취리히대 국제법 교수는 “무기를 수출하는 중립국 국가라는 점이 스위스를 딜레마에 빠뜨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스위스는 무기를 수출하는 사업으로 돈도 벌고, 무기를 통제해 ‘굿가이(좋은 중립국)’도 되고 싶어한다는 것인데요.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샌드백으로 전락한 건 아닐까요

일부 스위스인들이 지난해 4월 스위스 베른에서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부 스위스인들이 지난해 4월 스위스 베른에서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위스 역사학자 제이콥 태너는 “다른 국가가 스위스를 중립으로 간주하는 경우에만 중립국이 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스위스가 정의내린 중립과 다른 나라들이 인식하는 중립에는 엄청난 격차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스위스는 여전히 중립국 지위를 원합니다. 지난달 여론조사(1만6000명 대상)에서 약 60%가 중립국 지위를 지지한다고 했죠. 그런데 나머지 40%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해야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과연 푸틴이 유럽에 초래한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 스위스는 끝까지 중립국 원칙을 지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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