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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태어나게 해 미안해"…'생지옥''도살장' 불리는 이곳 [지도를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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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 나라의 ‘제2 도시’입니다. 어디일까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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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힌트

① “이런 곳에 태어나게 해 미안해”란 대사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2020년 개봉)의 배경.

② 2016년 러시아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출된 다섯 살 소년 옴란 다크니시(사진). 그의 별명은 ‘○○○의 기적’.

③ 인류 역사상 사람이 가장 오랫동안 거주한 도시. 아랍어 이름은 ‘할랍’으로, 뜻은 ‘우유’.

옴란 다크니시

옴란 다크니시

시리아 북서부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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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시리아의 제2 도시인 알레포입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새벽 튀르키예(터키) 남동부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아 초토화된 곳이기도 합니다.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한 시리아 소년이 알레포주 진데이리스 마을에서 잔해 더미 위에 앉아있다. AFP=연합뉴스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한 시리아 소년이 알레포주 진데이리스 마을에서 잔해 더미 위에 앉아있다. AFP=연합뉴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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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긴급 구호대를 파송해 ‘기적의 생환’ 소식이 이어지고 구호 물품이 착착 당도한 튀르키예 남동부의 도시와 달리, 알레포엔 적막만이 감돌았습니다. 알레포의 생존자들은 “아이와 부모님이 잔해 밑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구조해줄 사람도 장비도 없다”면서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쳤고, 삽과 곡괭이로 구조작업을 펼치던 민간 구조대 ‘하얀 헬멧’은 지진 발생 나흘 만에 생존자 수색을 멈춘다고 선언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9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일대에서 한국긴급구호대(KDRT)의 간호장교 김혜준 육군 대위가 구조된 생존자 어린이의 체온과 상태 등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9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일대에서 한국긴급구호대(KDRT)의 간호장교 김혜준 육군 대위가 구조된 생존자 어린이의 체온과 상태 등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같은 재난에,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 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 때문입니다. 특히 알레포는 내전 과정에서 반군과 정부군의 탈환·재탈환이 반복되며 엄청난 피해를 입어 ‘비극의 땅’으로 불렸죠. 설상가상으로 덮친 지진에 구호물자 수송로까지 끊겨 생존자가 살길마저 막막한데, 반군은 반군대로 정부를 통해 보급되는 국제구호품이 ‘정치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수급을 거부하고 있답니다. 외신들은 “폐허 위에 고통을 더하다”(알자지라), “전쟁에 이은 지진 공포로 기절한 도시”(타임스오브이스라엘), “붕괴 지점에 다다른 이들에게 닥친 최악의 순간”(뉴욕타임스)이라 전했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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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작, 시리아 내전

2011년 3월 15일, 반(反) 독재를 외치며 시작된 시리아의 민중 봉기가 내전으로 비화한 지 12년이 됐습니다. 그새 궐기의 시작이었던 ‘민주화의 외침’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이슬람국가(IS)·쿠르드민병대 등 수없이 많은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반군을 꾸려 시리아 정부에 대항 중이고, 반군끼리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정부군 대 반군’의 싸움에 더해 ‘반군 대 반군’의 싸움도 격화하고 있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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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시리아 북서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을 견제하려는 튀르키예의 개입, 시리아 정부를 돕는 이란과 이에 맞선 이스라엘의 공격, ‘부동항(시리아 타르투스항) 확보’에 혈안이 된 러시아의 개입과 이를 퇴치하려는 미국의 공격 등이 맞물리며 지금의 시리아 내전은 종교전·국제전·패권전이 얽히고 설킵니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교수는 “시리아에서 미군은 러시아 용병을, 이스라엘은 이란을, 튀르키예군은 쿠르드인을 죽였다”며 “시리아는 ‘모두의 모두에 대한 전쟁터’가 됐다”고 설명했죠.

기나긴 전쟁 속에 화학무기 사용과 대학살이 반복되는 등 교전은 막장으로 치달았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리아 민간인들의 몫이 됐죠. 이들은 이 전쟁이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잊은 채, 모든 걸 잃고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피란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리아 난민 여성이 레바논의 난민캠프에서 가족의 빨래를 텐트 밖에 널고 있다.AP=연합뉴스

시리아 난민 여성이 레바논의 난민캠프에서 가족의 빨래를 텐트 밖에 널고 있다.AP=연합뉴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알레포, 번영의 도시에서 죽음의 땅으로

시리아 전역이 피폐해졌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북서부 도시 알레포입니다. 특히 대지진의 피해까지 겹쳐 절망의 도시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전까지 알레포는 ‘인류 문화 유산의 보고’로 불렸습니다. 서아시아 문명의 발상지인 자지라·수메르에 가까운 덕분에 남부 다마스쿠스보다 먼저 도시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략 8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아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로 불립니다.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점토판에 이 오랜 도시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가로축으론 지중해와 이란(고대 페르시아)·중국을, 세로축으론 그리스·튀르키예·이집트를 연결하는 십자로 상에 위치해 여러 문화가 이곳에서 만나 융합했습니다.

시리아 알레포 북서부에 있는 성 시므온 성당이 지진으로 무너졌다. AFP=연합뉴스

시리아 알레포 북서부에 있는 성 시므온 성당이 지진으로 무너졌다. AFP=연합뉴스

유구한 역사 동안 번영을 누려온 만큼 바빌론·히타이트·아시리아·그리스·로마·우마이야·맘루크·오스만제국 등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있습나다. 기원전 16세기 청동기 시대에 처음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1200년 경 지금의 모습이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알레포 성채, 9세기 1만 권의 장서를 소장했다는 사이피야 도서관, 우마이야 대사원 등이 특히 유명하죠. 유네스코는 그 가치를 인정해 1986년 알레포 구시가지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시리아 중부 홈스의 로마시대 유적이 내전 중에 파괴된 모습. 알레포의 문화유산도 내전 기간 상당 부분 파괴됐다. AFP=연합뉴스

시리아 중부 홈스의 로마시대 유적이 내전 중에 파괴된 모습. 알레포의 문화유산도 내전 기간 상당 부분 파괴됐다. AFP=연합뉴스

반군 거점으로 집중포화…통폭탄 떨어진 ‘생지옥’

인구 300만 명의 활기찬 도시 알레포는 2012년 7월, 반군들이 모여들어 거점으로 삼으면서 시리아 내전의 최전선이 됩니다. 전투 초기엔 반군이 우세했습니다. 정부군의 최대 기지인 ‘46 군사기지’를 장악하며 기세가 올랐고, 정부군을 포위·압박하며 승기를 잡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아랍의 시아파 맹주 이란, 시아파 무장 세력인 레바논헤즈볼라(헤즈볼라) 등이 시리아 정부군 지원에 적극 나서면서 판세가 뒤집혔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 참전을 공식 선언하면서 알레포는 ‘죽음의 땅’이 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이란·헤즈볼라는 알레포를 완전히 봉쇄하고 식수·전기·음식·의료품 공급을 끊습니다. 이어 민간인 지역까지 통폭탄·집속탄·화학무기의 일종인 염소가스 폭탄을 수차례 투하하며 대규모·무차별 공습을 이어갔죠. 이들의 공격에 대형 인명 피해가 이어지면서 알레포는 ‘생지옥’ ‘도살장’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때 알레포에 쏟아진 공격에 대해 외신들은 ‘지구상에서 한 도시를 쓸어 없애려는 듯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알레포는 게르니카(스페인), 레닌그라드(소련), 그로즈니(체첸)와 함께 ‘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된 도시’의 상징이 됐습니다. 2016년 12월, 알레포 동부의 반군은 4년 반 만에 백기를 들었고 알레포는 온전히 정부군 손에 넘어갑니다. 내전 이후 반군 장악지인 동부 인구가 불과 4만 명으로 줄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의 한 장면. 중앙포토

시리아 내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의 한 장면. 중앙포토

“알아사드 독재 부활” 예상도

애초 시리아 내전은 ‘반 독재’ ‘반 정부’ 외침에서 시작됐습니다. 시리아 국민을 봉기하게 한 독재자는 알아사드 대통령 부자(父子)입니다. 197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2000년 사망 때까지 시리아를 철권통치한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1930~2000), 영국에서 안과의사로 일하다 시리아로 돌아와 2000년 대통령직을 세습한 2대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58) 현 대통령이죠.

알아사드 가문은 시리아 내에서 소수 종파에 속하는 알라위파(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 13%)입니다. 다수 종파는 수니파(74%)죠. 당초 시리아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던 알라위파의 상황은 하페즈 알아사드가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지도층으로 신분의 수직 상승을 이룹니다.

소수(알라위파)가 다수(수니파)를 지배하게 되면서, 하페즈는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내세웁니다. 특히 수니파 극단주의자에겐 즉결 처형을 감행할 정도로 철저히 탄압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니파가 장악한 알레포를 견제하고 알라위파의 세가 강한 다마스쿠스를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키우는 데 주력합니다. 1979년과 80년 알레포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 주도의 민중 봉기가 수차례 일어나자 하페즈는 집단 처형 등을 감행하며 무자비하게 탄압했죠.

 2012년 12월, 반군 장악 지역인 이들리브주의 한 박물관에 세워진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동상에 누군가 신발을 물려둔 모습. AFP=연합뉴스

2012년 12월, 반군 장악 지역인 이들리브주의 한 박물관에 세워진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동상에 누군가 신발을 물려둔 모습. AFP=연합뉴스

유엔인권사무소는 지난해 시리아 내전 10년간(2011년 3월~2021년 3월) 최소 30만6887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매일 83명이 사망한 셈이죠. 유엔은 교전이 격해지면서 시리아 내부로 접근이 어려워 사망자를 정확히 집계할 수 없는 상황이라 실제 사망자는 이 수치보다 훨씬 웃돌 것으로 전망됩니다. 내전을 피해 국제 떠돌이가 된 시리아 난민은 2020년 기준 671만 명에 이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시리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사실상 시리아 전역을 정부군이 장악한 상태고, 그간 시리아 정부를 강력히 제재했던 국제사회는 대지진을 계기로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분위기인데요. 일각에선 알아사드의 승리로 내전이 종식되고, 시리아는 이전보다 더 잔인한 독재 치하에 놓일 거란 예상도 나옵니다.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는 “여전히 반군의 기세가 꺾이지 않아 내전 종식을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설령 내전이 끝난다 해도 오랜 전투가 만든 깊은 상처를 봉합하고 정치적 화해를 이뤄 정상 국가로 작동하기까지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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