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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와중에도 꼭 갔다…푸틴이 집착하는 '흑해의 보석' [지도를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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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어디일까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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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를 드리자면,

힌트

① 한반도의 미·소 분할 신탁통치 시발점 얄타 회담(1945년) 개최지
②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년)가 말년에 요양한 곳
③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활약했던 OO전쟁(1853~1856년)

눈치채신 분들이 많죠? 다시 한번 지도를 통해 확인해봅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답은 크림반도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곳입니다.

지난 8일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일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일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다리 일부가 파괴되자 러시아 강경파들이 격분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즉각 "크림대교 폭발은 우크라이나가 배후"라고 지목하더니, 이틀 후부터 무차별적인 보복 공격을 하고 있는데요.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곳곳에 미사일, 자폭 드론(무인기) 등을 퍼붓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선 줄곧 "크림반도를 건드리면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름 휴양지로 인기 ‘흑해의 보석’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우크라이나 시절부터 크림자치공화국이 구성됐던 크림반도엔 거주민이 240만명쯤 됩니다. 65%가 러시아계로 친러 성향이 강하고 15%가량인 우크라이나계는 주로 크림반도 북부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남쪽으로 흑해와 맞닿은 크림반도는 온화한 기후 덕에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많습니다. ‘흑해의 보석’과 같은 곳이죠. 옛 소련 서기장들도 크림반도 남부 연안 도시 얄타에 별장을 지어 휴가를 보냈다고 합니다. 러시아 독립 매체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본토에서 찾아온 관광객이 950만명에 이릅니다. 비교적 전선과 가까운 곳인데도 올해 현재까지 500만명이 방문했습니다.

러시아 관광객들이 지난 7월 15일 크림반도의 가장 큰 도시인 세바스토폴의 흑해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관광객들이 지난 7월 15일 크림반도의 가장 큰 도시인 세바스토폴의 흑해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또 크림반도는 천연자원이 풍부해 '가능성의 땅'으로도 통합니다. 흑해 아래로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가스와 원유가 묻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측에 따르면 흑해 해저 천연가스의 매장 면적은 2조㎡가 넘고, 원유 잠재 추정치는 100억 배럴 가량에 이릅니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한번 이상 크림반도를 방문했는데요. 2020~2021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모스크바 관저에서 두문불출하는 와중에도 크림반도는 꼭 갔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제1성과로 여기고 있단 뜻이겠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018년 3월 14일 크림대교의 도로교를 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018년 3월 14일 크림대교의 도로교를 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남하하는 러 vs 막으려는 유럽

크림반도의 중요성은 푸틴 대통령이나 러시아에 상징적 수준을 넘어섭니다. 지리적으로 동서(東西)를 잇는 교두보에 있는 이곳은 부동항을 찾아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려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유럽이 숱하게 맞붙은 역사가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화약고 중 하나로 불리는 이유죠.

러시아 해군들이 지난 2017년 7월 30일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해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해군들이 지난 2017년 7월 30일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해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크림반도 남서쪽에 위치한 최대 연안 도시 세바스토폴에서 유독 격전이 잦았습니다. 1804년 흑해함대의 중심축으로 규모를 키우면서 러시아 주요 군사기지가 됐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제국은 영국·프랑스의 침공으로 발발한 크림전쟁(1853~1856)에서 패해 세바스토폴항에서 흑해함대를 철수하는 수모를 겪었고, 소련은 1941년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맹공을 세바스토폴 요새에서 방어했으나 결국 항복했습니다.

세바스토폴항은 현재도 러시아 흑해함대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중해와 남대서양·인도양까지 러시아 해군이 진출하는 데 필수적인 지역으로 꼽힙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진에 격렬히 항의해 온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냉전의 최후 보루’로 여깁니다. 러시아를 향해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나토를 저지하는 마지노선이 우크라이나, 특히 크림반도란 거죠. 우크라이나가 친서방 세력 손에 넘어갔을 때 북부(친러시아 벨라루스)·동부(러시아 서부)·남부(크림반도) 3개 전선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협할 수도 있게 됩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올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크림반도를 포함한 3면에서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크라 ‘친서방’ 돌아서자 침공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갈등의 씨앗은 1954년에 심어졌습니다. 당시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재임 1953~1964년)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를 넘깁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당시 그대로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우크라이나 안에서도 친러시아 입김이 세던 시절이라 ‘이혼 갈등’에서 크림반도 반환은 문제되지 않았죠.

문제는 또다시 세바스토폴이었습니다. 러시아 흑해함대는 수천만 달러를 주고 세바스토폴 항구를 임차해 사용해 왔는데, ‘친서방’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재임 2005~2010년)이 임대 연장을 반대하면서 양국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이후 ‘친러시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재임 2010~2014년)은 집권과 동시에 임대 기간을 연장해 갈등을 해소했고, 전 정부에서 야심 차게 준비했던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 추진도 엎어버립니다.

지난 2014년 3월 1일 크림반도의 한 도시를 지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014년 3월 1일 크림반도의 한 도시를 지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 [AP=연합뉴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반(反)러시아’ 감정에 불을 지폈습니다. 2013년 11월 반정부 시위인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고, 우크라이나는 급격히 친서방으로 돌아섭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때 크림반도에 나토군이 들어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고, 2014년 2월 크림반도에 무력 진입을 강행합니다. 대규모 시위로 어수선했던 터라 대응 여력이 없었던 우크라이나는 밀려드는 러시아군을 저지하지 못했고, 이후 크림공화국 친러 세력이 주축이 돼 러시아와 병합까지 일사천리 진행됩니다.

수로·육로 막고 버텼던 우크라이나

반도라는 건 삼면이 바다이고 한쪽은 내륙과 연결된 거죠. 동서남이 바다에 면한 크림반도의 북쪽은 우크라이나 본토와 맞닿아 있습니다.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강탈 당한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북쪽 헤르손주(州)를 통과하는 북크림 운하에 모래주머니와 진흙으로 댐을 건설해 물 공급을 차단해 버립니다. 북크림 운하는 그때까지 크림반도에 85%가량 물을 공급했고 이는 주로 농경지 관개용수로 쓰였는데요, 이 때문에 벼농사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사실상 ‘섬’이 된 크림반도에 식료품 등 물자 공급 루트도 별도로 필요해졌죠. 러시아 본토와 연결하는 길이 19㎞의 크림대교가 건설된 이유입니다.

2014년 4월 28일 크림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키로프스케 지역의 북크림 운하 모습.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주의 북크림 운하를 막아 크림반도의 물 공급을 차단해 말라있다. AFP=연합뉴스

2014년 4월 28일 크림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키로프스케 지역의 북크림 운하 모습.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주의 북크림 운하를 막아 크림반도의 물 공급을 차단해 말라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는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헤르손주를 완전히 장악하고, 바로 댐을 폭파해 말랐던 북크림 운하에 물을 흐르게 합니다. 지난 6월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전부 점령하자 러시아~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크림반도를 연결하는 1200㎞의 철도 선로를 복원하고 도로를 개통해 물자를 실어나르기 시작했습니다. BB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주요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젤렌스키 "크림 해방으로 전쟁 끝" 

크림반도가 섬을 탈피하면서 이제 우크라이나가 고립됐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최대 수출품인 곡물을 실어나르는 흑해 주요 항구가 다 막힌 거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8월 "크림에서 시작된 전쟁, 크림 해방으로 끝나야 한다"고 천명합니다. 프랑스 매체 르몽드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크림반도 공격은 "러시아가 오래전 점령한 영토를 탈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고취하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과 화상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과 화상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군이 거침없이 반격하면서 러시아군을 동·남부에서 격퇴하자,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는 미국도 한껏 고조됩니다. 이달 초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가 "미국이 준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등으로 크림반도를 포함한 대다수 목표를 공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서방이 진짜 코앞에 왔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할 수밖에 없겠죠.

크림반도는 당대 최강국이 가졌던 땅입니다. 13세기 몽골 제국, 15세기 말 오스만 제국, 18세기 말 러시아 제국이 차지했습니다. 21세기에 ‘위대한 러시아’를 만들겠다는 푸틴 대통령이 과연 크림반도를 사수할 수 있을까요. 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8년 간 뺏겼던 ‘흑해의 보석’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요. 확실한 것은 크림반도의 주인이 가려질 때라야 이 전쟁이 막을 내릴 거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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