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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픔, 공으로 되갚는다...월드컵 빛낸 '북아프리카 진주' [지도를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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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모양을 한 이곳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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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① "그대 눈동자에 건배" 명대사로 유명한 영화 ‘카사블랑카’ 배경지
② 2018년 한의학(韓醫學)이 최초로 진출한 아프리카 국가
③ 비잔틴과 로마의 모자이크에서 유래된 유명한 OOO 타일

고대 이슬람 문양이나 패턴 등이 있는 타일. 사진 유튜브 캡처

고대 이슬람 문양이나 패턴 등이 있는 타일. 사진 유튜브 캡처

주변 지도를 살펴볼까요.

감이 오셨죠?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한 모로코입니다. 모로코 축구대표팀이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아프리카·아랍 국가 사상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모로코는 물론 아프리카·아랍권 전역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모로코가 15일 오전 4시(한국시간)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이긴다면, 19일 0시에 아르헨티나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는데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처음 본선에 진출한 후 52년 만에 우승 트로피까지 넘보게 됐으니 3745만명의 모로코인은 얼마나 신날까요. 해외에 거주하는 560여만명의 모로코인도 흥분했습니다. 특히 프랑스·스페인·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 등 유럽에 사는 500여만명은 격하게 환호했습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모로코가 지난 11일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이기자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모로코 이주민 2만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프랑스가 잉글랜드를 꺾고 준결승 상대로 결정되면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죠. 급기야 경찰에게 폭죽을 터뜨리고 유리병을 던지는 등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경찰 20여명이 다치고, 현장에서 100여명이 체포됐다고 합니다.

프랑스와 모로코 팬들이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카타르월드컵 8강전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축하 행렬이 과격해지면서 경찰 수백명이 동원됐다. EPA=연합뉴스

프랑스와 모로코 팬들이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카타르월드컵 8강전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축하 행렬이 과격해지면서 경찰 수백명이 동원됐다. EPA=연합뉴스

앞서 조별 리그 벨기에전, 16강 스페인전에서 이겼을 때도 벨기에·스페인 등에서 모로코 이주민들이 경찰차를 부수는 등 소동을 일으켜 논란이 됐죠. 프랑스 경찰 당국은 준결승전에서도 모로코 이주민과 프랑스인 사이에 충돌할 가능성을 염려해 바짝 긴장하고 있답니다.

모로코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차례로 꺾고 프랑스와 맞붙으면서 이 나라들과 얽힌 역사적 애증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유럽 코앞 모로코, 오랜 식민지 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모로코는 유럽의 남서쪽 끝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와 아주 가깝습니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경계 짓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로 불과 14㎞ 정도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고, 그 북쪽으로 프랑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모로코는 ‘열사의 땅’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아프리카 보석’으로 불리는데요. 푸른 바다, 붉은 사막, 만년설 등을 다 볼 수 있어 휴양도시로는 그만이죠. 수도 라바트를 비롯해 해안 도시 카사블랑카, 탕헤르 등은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합니다.

모로코 남쪽에 펼쳐져 있는 해발 4000m급 아틀라스 산맥에는 만년설이 있어 스키 리조트 사업이 활발합니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면 세계 최대의 사막 사하라도 볼 수 있습니다. 거기다 전기차 배터리용으로 쓰이는 인광석 매장량은 세계 1위죠. 그 외 중정석·납 등 광물자원이 풍부합니다.

지정학적 이유로 모로코와 유럽은 영토 다툼이 잦았습니다. 이슬람교가 번성한 700~1200년대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모로코가 장악했지만,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주요 항구를 빼앗기는 등 판세가 뒤집히죠. 서구 제국주의가 한창 팽배하던 19세기에는 아프리카 진출 교두보인 모로코가 유럽 국가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릅니다. 서구 열강의 다툼 끝에 1912년 프랑스와 스페인이 모로코를 지배하게 됩니다.

1920년대 모로코 북부 지역에서 무장 반란이 일어나고, 1930년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민족운동이 전개되면서 1956년에 그토록 원하던 독립을 이룹니다. 다만 세우타, 멜리야 등 모로코 영토 내 일부 항구는 여전히 스페인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민 2·3세가 만든 월드컵 4강 신화 

이런 모로코의 식민지 역사가 역설적으로 월드컵 4강을 만든 측면도 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모로코 축구대표팀 26명 중 모로코에서 태어난 선수는 12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14명은 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 등에서 태어난 이민 자녀입니다. 식민지 시절부터 이주한 모로코인의 후손이죠. 월드컵은 부모 혹은 조부모 혈통에 따라 국적을 변경해 출전 가능합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프랑스 정부는 식민지 시절 모로코인 약 20만명을 이주시킵니다. 1차 세계대전(1914~18년) 이후 프랑스 공장·광산·군대 등에 인력 부족이 심각했기 때문이죠. 1960~70년대에는 가난했던 모로코인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유럽으로 향했고,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프랑스·스페인·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모로코 정부도 높은 실업률 해소를 위해 자국민의 유럽 이주를 권장합니다.

모로코인은 공장 노동자·가사도우미·청소부 등으로 일하면서 가정을 꾸려 정착했습니다. 이들은 ‘유러피언 드림’을 꿈꿨습니다. 자식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부족한 살림에도 힘들게 뒷바라지하는데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대표팀 수비수 아슈라프 하키미는 노점상을 한 아버지와 가사도우미인 어머니의 헌신으로 프랑스 명문 클럽 파리 생제르맹 선수가 됩니다.

모로코 축구대표팀 수비수 아슈라프 하키미(오른쪽)가 지난달 27일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벨기에를 이긴 후 관중석에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모로코 축구대표팀 수비수 아슈라프 하키미(오른쪽)가 지난달 27일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벨기에를 이긴 후 관중석에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키미는 이번 대회에서 승리할 때마다 관중석에 있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습니다. 알자지라 등 아랍 매체는 식민지배국 스페인·프랑스에서 성공한 하키미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모로코 대표팀을 선택한 사연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아프리카계 무슬림 차별 한풀이하나

유럽에 있는 모로코인이 이번 월드컵에서 유독 거친 반응을 보이는 건 독립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차별에 대한 응어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유럽에선 아프리카계 무슬림을 꺼려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모로코 팬들이 지난 11일 카타르 도하에서 월드컵 4강 진출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모로코 팬들이 지난 11일 카타르 도하에서 월드컵 4강 진출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AP통신은 지난 7월 여러 보고서를 인용해 모로코 출신 등 아프리카계 무슬림들은 유럽에서 좋은 직장을 얻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전했습니다. 그 외 집을 구하거나 교육에서도 차별받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2016~17년 프랑스·스페인·영국·핀란드 등에서 일어난 테러사건 범인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을 추종하는 모로코나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무슬림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반감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럽을 휩쓴 극우세력 열풍도 반(反)무슬림 정서에 불을 지폈죠. 2017년 네덜란드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모로코인을 “쓰레기들”이라며 인종차별적 폭언을 쏟아내 논란이 됐습니다.

 모로코 축구대표팀의 유세프 엔네시리(가운데)가 지난 11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카타르월드컵 8강전에서 전반 42분 헤딩골을 넣은 후 포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모로코 축구대표팀의 유세프 엔네시리(가운데)가 지난 11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카타르월드컵 8강전에서 전반 42분 헤딩골을 넣은 후 포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키미 등 유럽에서 온 대표팀 선수들도 어린 시절 차별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 등 유럽 축구연맹의 제안을 거부하고 모로코 대표팀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 차별의 역사를 아는 선수들은 “모든 아프리카, 모든 아랍국가, 전 세계 모든 무슬림을 위해 끝까지 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 모로코인 여성은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축구대표팀은 모로코가 어떤 역경에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우리 역사의 상처를 치유해준 그들에게 영원히 감사할 겁니다.”

모로코의 이번 월드컵 여정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로코인에게 엄청난 자긍심을 심어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룩했을 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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