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숨진 채 발견…유서엔 "버티기 힘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달 20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가해자 일당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달 20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가해자 일당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0억원대 전세 사기 혐의로 최근 구속된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2일 인천 미추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후 5시 40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3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 지인은 연락이 되지 않는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 문이 열리지 않자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숨져있는 A씨를 발견했다.

A씨 휴대전화에서는 메모 형태의 유서가 있었다. 휴대전화 기록상 A씨가 숨진 채 발견되기 이틀 전인 지난달 26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유서에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활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며 '대책위 관계자와 지인들에게 고맙다'는 내용을 적었다. 어려운 가정환경 등을 언급한 부분도 있었다.

또 '(전세 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며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썼다고 한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을 발견하지 못해 범죄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가족에게 A씨 시신을 인계했다.

대책위 "피해 구제 대책 촉구" 

대책위에 따르면 A씨가 살던 빌라는 현재 임의 경매에 넘어간 상태로 그는 최근까지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소액임차인은 전셋집이 경매 등에 넘어갔을 때 최우선으로 일정 금액의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는다.

2011년 주택 근저당권이 설정된 A씨 빌라의 전세금은 7000만원으로, 당시 소액임차인의 전세금 기준인 6500만원을 초과한다. 이 때문에 A씨는 소액임차인에 해당하지 않아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책위는 오는 6일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남광장에서 추모제를 열 계획이다. 대책위는 "수많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잃고 대출 상환 압박을 받거나 길거리로 내몰렸다"며 "정부와 인천시 대책은 재발 방지 중심이고 피해 구제 방안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건축왕으로 불린 B씨는 지난달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지난해 1∼7월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3채의 전세 보증금 126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주택을 사들이기 시작한 그는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아파트나 빌라 건물을 새로 지은 뒤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아 또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부동산을 늘려갔다. B씨 소유 주택은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모두 2700채로 대부분은 그가 직접 신축했다.

한편, 정부는 악성 임대인 소유 주택의 전세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특별점검에 나선다. 이른바 '빌라왕 전세 사기'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한 조치다.

국토부는 점검 결과에 따라 중개대상물 표시·광고 위반, 확인·설명 의무 미이행, 중개보조원 미신고 같은 불법 행위가 발견되면 행정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전세 계약상 중요한 정보의 거짓 제공, 중개보수 과다 책정, 가격 담합에 대해선 관련 증거를 확보한 후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