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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거대 강성 노조 개혁 없이 미래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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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공공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스1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공공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스1

남의 일자리 봉쇄하고 뒷돈까지 받은 무법 노조

양대 노총의 탈법적 일탈이 한국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하고 있다. 국민 주거 안정과 직결된 건설 현장이 한 사례다.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타워크레인 기사 438명이 건설사로부터 1인당 평균 5600만원의 월례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부분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이다. 월례비는 월급과는 별도인 일종의 ‘상납금’이다. 상위 20%는 평균 9500만원을 받았는데, 2억2000만원을 챙긴 경우도 있었다. 적발된 총액이 243억원에 이른다. 은행 계좌로 확인된 숫자가 이 정도이니 실제 상납은 더 광범위하고 뿌리 깊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노조의 이어진 행태는 더 경악스럽다. 월례비를 주지 않으면 태업하고, 비노조원에겐 일감을 맡기지 않도록 회사를 압박하고, 그러면서 정작 노조 가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공사 지연, 공사비 상승 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다른 근로자의 일할 기회를 봉쇄하면서 뒷돈을 챙기고 민생을 어렵게 한 횡포다.

양대 노총은 조직적으로 정부의 회계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민노총 소속 노조는 25%만, 한노총은 39%만 자료를 제대로 제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양대 노총은 지난 5년간 정부·광역지자체로부터 1500억원 이상을 지원받았다. 게다가 노조 회비에 대해 상당 규모의 세액공제를 받아 왔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회계 투명조차 거부하는 것은 거액의 용처에 대해 떳떳하지 않다고 자인하는 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득권 강성 노조의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노동개혁은 거대 노조의 불·탈법 해소로 첫걸음을 떼야 한다.

야당은 불법파업 손배 힘들게 할 ‘노란봉투법’ 강행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어제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강행 처리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인데, 노조의 파업 가능 범위를 넓히고 파업으로 손해를 본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을 전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는 내용이다. 정부와 재계가 “파업 만능주의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해 왔지만 거대 야당이 수적 우위로 밀어붙였다.

개정안은 우선 사용자 개념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했다. 당장 어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연 세미나에선 강제로 하청 근로자의 사용자가 될 경우 도급 업체가 많게는 1000개 이상인 기업들의 활동에는 큰 장애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도급 활용이 어려워지면 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마저 흔들릴 수 있다.  개정안은 또 노동쟁의의 정의에서 ‘근로조건의 결정’이란 표현을 ‘근로조건’으로 바꿨다. 지금은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만 파업할 수 있으나 법 통과 시 단체협약 체결 후라도 언제든 근로조건의 해석을 놓고 파업할 수 있다. 노사 간 이견을 파업으로 해결하려는 경향만 강해지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불법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금지하는 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파업 노동자 상대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 법원이 배상의무자별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게 했다. 파업은 집단 행위인데 조합원별로 입증하라는 것은 청구 자체를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기업과 재계에선 강행 처리에 반대해 왔다. 여권에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한다. 이런데도 민주당은 여당이 위원장인 법사위를 피해 본회의 직회부를 꾀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거대 강성 노조 편향의 무리수를 멈추고 귀를 열어야 한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노조 문화, 희망을 본다

청년층이 중심인 MZ세대 노동조합들은 어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 발대식을 하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LG전자·서울교통공사 등에서 MZ세대 노조 여덟 곳이 참여했다. 조합원 구성은 다양하지만 20~30대 사무·연구직이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란 양대 조직의 거대한 영향력에서 벗어나 청년 세대의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MZ노조 협의회는 공정·상식·상생 등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시대착오적인 과격 투쟁 대신 합리적 노조 활동으로 공정한 보상과 실리를 추구하자는 취지다. 이념 편향의 정치 파업은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송시영 협의회 부의장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열심히 일해서 좋은 대우를 받는 게 노조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역할에 대한 상식적인 설명이지만 그동안 양대 노총 지도부에선 듣기 어려웠던 말이다.

이미 MZ노조는 기존 노동계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양대 노총은 회계장부 공개와 관련해 “자주권 침해”라고 반발하지만 MZ노조는 자발적으로 조합비 사용 내역을 공개한다. 노조의 회계 투명성은 당연한 일이자 의무다. 그런데도 기존 노동계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는 MZ노조와 상당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현실적으로 MZ노조의 영향력은 아직 크지 않다. 노조의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해 노사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장년 생산직 위주의 기존 노조와 달리 MZ노조에는 조합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노조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청년층에선 MZ노조에의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갈수록 실용의 목소리를 키워가는 MZ노조가 갈등과 대결이 아닌 합리적 노조 문화의 선구적 모델이 되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