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던 잠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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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전까지 섬

잠실(蠶室)은 '누에를 기르는 지역'이란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주요 산업인 양잠업을 육성하기 위해 왕이 이곳에 잠실을 세우고 직접 관장했다. 당시 서울(한양)에는 ▶서잠실(서대문구 연희동) ▶동잠실(광진구 자양동) ▶신잠실(서초구 잠원동) 등 세개의 잠실이 있었다.
조선시대 말기에 접어들면서 양잠업이 쇠퇴하는 대신 뽕나무 묘목이 잠실의 주 수입원이 됐다. 1945년대까지 뽕나무 밭이었던 잠실은 50년대부터 오이·배추·땅콩·참외 밭으로 바뀌었다.
잠실은 70년까지만 해도 200가구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서울속의 섬'이었다.
여름철이면 상습 침수구역이었던 잠실섬은 그러나 1971년 매립공사로 바로 옆 '부리도'와 함께 육지가 됐다. 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 사업이 추진돼 현재의 윤곽을 갖추게 된다.
75~76년 잠실 시영아파트와 잠실 주공 1·2·3·4단지, 77년에는 주공5단지가 각각 준공됐다. 80년에는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됐고, 84년에는 탄천과 한강이 합류하던 물길 언저리에 잠실종합운동장이 들어섰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88년 문을 열었다.

프리미엄 김관종·라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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