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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인권 유린 가해자인데, 왜 우리끼리 싸워야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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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호 13면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국제 공조를 더욱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영재 기자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국제 공조를 더욱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영재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일어난 각 분야의 정책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북한 인권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새 정부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11일 외교부와 국방부의 신년 업무보고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단순한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라며 “북한 인권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건 국가 안보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속에 이런 정책기조 변화의 배경이 함축돼 있다.

앞서 정부가 5년간 공석 상태이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에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다양한 활동 경력을 가진 정치학자 이신화 고려대 교수를 임명한 배경도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설명이 된다.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에 따라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문재인 정부를 거치는 동안 내내 공석이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이 대사는 최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인권 유린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선후 관계가 있을 수 없다”며 “북한의 군사 도발과 인권 문제는 따로 볼 게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기본 원칙은 뭔가.
“2016년 북한 인권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제정된 북한인권법은 특정 정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게 아니라 여야 공동 발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이다. 이는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북한 인권 문제만큼은 정쟁화하지 않겠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 셈이다. 그런 만큼 남북관계를 이유로 인권을 유린하는 북한 정권의 눈치를 봐선 안 된다. 북한 주민의 인권 침해를 이해득실에 따라 외면하고 침묵하는 나라가 어떻게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겠는가.”

유엔총회는 지난해 12월 북한인권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문재인 정부 때의 전례를 뒤엎고 윤석열 정부는 공동제안국에 참여했다. 지난달 결의안엔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을 간접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으로 송환되는 북한 주민이 강제 실종, 자의적 처형, 고문과 부당한 대우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이 대사는 “북한이 가해자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 정부가 이런 조치를 선제적으로 하지 못한 게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인권 문제를 보편적 가치가 아닌 정쟁의 대상으로 삼은 걸 반성해야 한다. 진짜 잘못한 당사자는 북한인데 왜 우리끼리 싸우고 있어야 하느냐”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비핵화가 인권 문제보다 더 시급한 과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안다.
“안타깝게도 이전 정부는 남북관계를 고려해 북측이 예민해 하는 인권 문제를 사실상 외면하다시피 했다.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제출될 때도 공동 제안국에서 3년이나 빠지지 않았나.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핵화도 이루지 못했고 북한 주민들 인권도 좀처럼 나아지지 못했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두 문제를 패키지로 풀어야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북한이 쏘아올린 60여발의 미사일 발사에 든 비용만 최대 5억3000만달러(약 6590억원)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중국에서 수입한 7~8년치 쌀값과 맞먹는 규모다. 그만큼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만성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의 생존권이야말로 방치할 수 없는 인권 문제 아닌가.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을 살리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이 필수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이 단순히 식량이나 코로나19 백신 등을 원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 단계를 뛰어넘어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 주는 수준까지 확장돼야 한다. 주민들이 북한 당국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나라 안팎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제사회가 중국의 위구르족이나 소수 민족이 겪는 인권 탄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듯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함께 이슈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국제 무대에서 북한 인권 얘기를 하면 오히려 우리보다 더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국가들이 적잖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도 장기 미결 과제다.
“정부 공식 추산으로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은 516명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의 가족이 억류자를 만나지도 못하고 있고 생사도 알 길이 묘연하다는 점이다. 이 또한 국제인권법 위반이다. 앞으로 억류자 생사뿐 아니라 수용소 내 처우 환경도 적극 조사할 방침이다. 때마침 지난해 11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억류자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이 채택됐고 통일부도 억류자 석방 논의에 본격 나서기로 한 만큼 조만간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막는 데 대해서도 그동안 쓴소리 한 번 못했지만 이젠 제대로 비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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