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해진 창덕궁 안내판 … 누가 만들었나 했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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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창덕궁의 안내판이 새 단장을 했다. 주먹구구식 색깔과 모양이 회갈색(기와색) 알루미늄 판으로 깔끔해졌다. 어려운 단어로 꽉 차있던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정보로 최소화했다. 궁궐마다 어색하게 서있던 안내판을 치우고 권역별로 다시 설치했다.'안내판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교체작업에는 여러 사람의 보이지 않는 땀과 수고가 녹아 있다. 바로 우리 문화유산 지킴이인 아름지기와 '디자인 드림팀'의 활약이다.

궁궐 안내판을 디자인한 전문가들이 서울 창덕궁 안에 세워진 새 안내판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마이클 락 예일대 교수, 안상수 홍익대 교수,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 최홍규 쇳대박물관 관장.[김성룡 기자]


아름지기는 지난해 초 궁궐에 어울리지 않는 안내판에 주목했다. 새로운 안내판으로 바꿀 것을 문화재청에 제안해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아름지기는 바로 디자인팀을 꾸렸다. 건축.디자인.제작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안상수체를 개발한 안상수 홍익대 교수와 마이클 락 예일대 교수가 팀을 이끌었다. 안내 문안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제작은 최홍규 쇳대박물관 관장이, 자문에 건축가 조성룡.민현식.승효상씨가 참여했다.

창덕궁 입구에 첫 안내판이 설치된 17일 오후, 창덕궁 사무소에서 이들이 모여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1년반 동안 공들여 온 작업이 결실을 맺게 된 기념이다. "정말 오랫동안 씨름해서 나온 작품이라 감회가 새롭다" "자식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 오갔다. 민현식씨는 "작업을 위해 항공사진 촬영을 하는 등 세심하게 준비했다"며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서로 끊임없이 토론하며 열린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궁궐 안내판 작업에 외국의 유명 디자이너가 참여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디자인회사 2×4의 대표이기도 한 마이클 락 교수는 "궁은 가장 한국적인 장소인 동시에 외국인이 찾는 국제적인 장소라 작업하기에 매력적이었다"며 "이방인이 와서도 편안하게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안내판의 읽기 쉬운 문구를 만들기 위해 김봉렬 교수는 창덕궁 구석구석을 수십번 답사하고, 역사서적을 탐독했다. 김 교수는 "기존 안내문은 궁궐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투였다. 새 안내문은 관람자가 원하는 내용을 쉽게 전달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궁궐의 생활영역이 궁과 마당.인근 건물 등 하나의 권역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착안해 권역별로 내용을 실었다.

창덕궁에 이어 다음달엔 경복궁의 안내판이 전면 교체된다. 아름지기는 내년에는 종묘 등 다른 문화재로 안내판 교체 작업을 확대한다. 이와 더불어 입장권.리플렛.오디오가이드.전문서적 등을 위한 새로운 디자인도 내놓을 계획이다.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정작 모른다. 안내판 작업으로 궁궐이 더욱 아름다워지고 관람객이 편안하게 정보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박지영 기자<naz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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